숲노래 살림말
11월 가을엔 이런 사람 : 고흥에서 열 해를 살며 은행나무를 거의 못 본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던 무렵이나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 적에는 은행나무를 아주 쉽게 만났다. 가만 보면 은행나무는 매캐한 도시 바람을 걸러내는 몫을 톡톡히 하느라, 굳이 시골에까지는 안 심지 싶다. 아무튼 광주에 마실을 나와 길을 걷는데 곳곳이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벚나무처럼 봄에 눈부신 꽃을 베풀지 않으나 가을이 저물 즈음 샛노란 잎빛으로 눈부신 나날을 베푼다. 보라, 길바닥이 온통 노랑잔치(금빛잔치)로 물결치지 않는가. 이 노랑잎을 주워서 수첩에 말린다. 적어도 며칠 뒤에 쓰려 했는데 저녁에 만난 이웃님한테 살짝 넉줄글을 잎에 적어서 건네었다. 잎이 다 말랐으면 글씨가 좀 반듯했을 테지만, 그래도 좋다. 11월 가을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된다. 2019.11.28.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