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행간 : 학교에서는 글을 그냥 읽지 말라고, ‘행간(行間)’을 읽으라 가르치더라. 그러면 행간이 뭔가? 이 일본스러운 한자말은 무엇을 알려줄까? 아마 그 어느 것도 알려주지 못하리라. 우리가 쓰는 말이 아니라, 일본스러운 지식을 펴는 말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탕뜻은 “줄 사이”인 행간일 텐데, 둘쨋뜻은 “숨은 뜻”이라고 한다. “줄 사이”이든 “숨은 뜻”이든 뭔 소리일까? 겉으로 적힌 글씨에 휘둘리거나 속거나 눈을 두지 말라는 소리이다. 그러면 뭘 읽으라는 소리일까? 오직 하나, 글씨에 담은 글쓴이 마음이며 생각이며 삶이며 살림이며 사랑이며 숨결이며 넋이며 빛이며 어둠이며 시샘이며 미움이며 바보짓이며 기쁨이며 슬픔이며 노래이며 멍울이며 생채기이며 아픔이며 신바람이며 꿈이며, 이런 여러 가지를 읽으라는 소리이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이렇게 말을 않고 ‘행간’이라는 일본스러운 말을 버젓이 쓸까? 사람들이 누구나 ‘읽기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쉽게 바로 알아차리면, 온누리를 휘감은 거짓껍데기가 이내 들통이 나겠지. 그렇다고 아예 안 짚거나 안 가르칠 수는 없으니, 학교교육과 독서교육이란 틀에서는 살짝 맛보기처럼 짚고서 지나가고 만다. 이러면서 학교교육이나 독서교육이 뭘 하는가? 학교교육에서는 시험을 치르면서 ‘속읽기(행간 읽기)’하고 동떨어진 길을 간다. 독서교육에서는 ‘독후감 쓰기’란 이름으로 그저 줄거리만 줄줄 꿰도록 내몬다. 글마다 서린 속내는 다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시험점수로 평가를 하고 독후감으로 잘라낼 수 있을까? 우리 삶터는 ‘행간·학교교육·독서교육’, 여기에 ‘신문기자·출판평론가·인터넷서점MD’까지 얽힌 거짓수렁에 단단히 잠겨서 못 헤어나오는 꼴이라 할 만하다. 행간이란 말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나, 이런 말은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 ‘속읽기’를 하면 될 뿐이다. 2005.12.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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