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속독법 : 모든 속독법은 거짓말이다. 모든 속독법은 책읽기하고 동떨어진다. 책은 빨리 읽을 까닭도 없지만 느리게 읽을 까닭도 없다. 책을 손에 쥐어서 무언가 얻고 싶다면 ‘줄거리 아닌 사랑’을 얻으면 될 뿐이다. 속독법은 뭔가? 속독법은 책에 흐르는 사랑이 아닌 한낱 줄거리만 빨리 받아먹도록 이끈다. 자, 생각해 보라. 속독법, 이른바 ‘빨리읽기·빨리훑기’를 해내어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에 이르는 책이 어떤 줄거리인가를 알아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무엇을 배울까? 이렇게 줄거리를 얻은 삶은 어떻게 나아지거나 달라지거나 좋아질까? 자, 스스로 보라. 빨리빨리 읽어내어 줄거리를 꿰찬 이들은 딱히 안 나아지거나 안 달라지거나 안 좋아진다. ‘사랑 아닌 줄거리’를 꿰찼으니까. 그렇다면 느리게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굳이 느릿느릿 읽어야 할 까닭이 없다. 속이 빈 책은 느리게 읽을 수도 없을 만큼 허술하기에 몇 쪽만 넘겨도 모조리 꿰뚫을 수 있다. 텅텅 빈 속을 감추려고 겉을 꾸미거나 글멋을 부리거나 껍데기를 반짝반짝 꾸민 책이라면 더더구나 알맹이가 없기 마련이라, 이런 책은 애써 넘기거나 사지 않더라도 ‘텅 빈 속살’이자 ‘사랑 없이 맹물인 가슴’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마음을 읽으면 다 알아낸다. 사랑을 읽으려 하면 다 보인다. 마음을 읽으려고 책을 펴 보라. 마음이 없는 책이라면 끝 쪽까지 그냥 후루룩 넘기다가 끝이 난다. 사랑이 없는 책도 이와 같으니, 구태여 속독법 따위를 배우려 하지 말고, 빠르게도 느리게도 읽을 까닭조차 없다. 오직 온마음을 다해서 마주한 다음 그저 마음을 읽고 사랑을 읽으려 하면 된다. 1998.1.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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