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할아버지들 꿈길 1999.11.25.
― 경기 과천 〈한라에서 백두〉
경기 광주에는 ‘나눔의 집’이 있고, 경기 과천에는 ‘한백의 집’이 있습니다. ‘한백의 집’에 모여서 살아가는 할아버지는 사슬터에서 준법서약서도 감찰보호법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기나긴 해를 살았다지요. 만델라보다 훨씬 오랫동안 조그마한 사슬칸에서 지내다가 아주 늘그막에 비로소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지요. 이들 사슬터 할아버지는 사슬 바깥으로 나가서 무엇을 하며 마지막 삶을 갈무리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헌책집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온누리에 새로운 책이 넘치고 가득하지만, 그 새로운 책은 젊은이 몫이요, 늙은자리에서는 오래된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려 젊은이한테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노릇을 얼마쯤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러면서 바깥바람도 바깥사람도 가만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여겼답니다.
할아버지 네 분 이름을 적어 봅니다. 김은완, 안영기, 장호, 홍문기. 네 할아버지는 사슬터에서 나온 지 이제 아홉 달이라는데, 짧다면 짧을 이 아홉 달이 오히려 여태 살아온 나날보다 훨씬 깊고 넓게 ‘사람 사는 길’을 일깨운다고 이야기합니다.
네 할아버지는 헌책집 이름을 〈한라에서 백두〉로 짓습니다. 한라부터 백두까지 줄기차게 이어지는 새롭고 슬기로우며 사랑스러운 길을 꿈꿉니다. 한라부터 백두까지 어떤 쇠가시그물도 없이 맨발하고 맨손하고 맨몸으로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길을 꿈꿉니다. 한라부터 백두까지 사람을 비롯해 뭇숨결이 홀가분하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꿈꿉니다.
두레집 ‘한백의 집’ 가까이, 과천 정부종합청사역(4호선)에서 내려 언저리에 있는 ‘서울 호프 호텔’이란 곳으로 가서 2층으로 올라서면 이곳 〈한라에서 백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네 할아버지는 헌책집 자리도 참 재미난 곳에 얻으셨네 하고 느끼며 찾아갑니다. 네 할아버지가 헌책집을 열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제가 일하는 출판사 일터 한켠에 책짐을 잔뜩 꾸려 놓았어요. 제가 사서 읽은 책도, 출판사에서 새책으로 팔 수 없는 ‘다친 책(겉에 흉이 생기거나 손때가 묻거나 반품 도장이 찍힌 책)’이며, 이웃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이며 400자락쯤 모았습니다.
이 책꾸러미를 등짐으로도 지고 끈이며 상자로도 담아 지하철에 실어 신나게 땀흘리며 찾아갑니다.
〈한백〉 할아버지는 “뭘 이런 걸 가져오셨소? 책방에 책을 사러 오기만 해도 반가운데 선물을 가져오셨네?” 하시더니, 얼마 앞서 찾아온 공안검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아버지를 찾아온 공안검사는 “당신은 공산주의가 좋소 자본주의가 좋소?” 하고 물었다지요. 이러면서 “공산주의 통일을 바라오 자본주의 통일을 바라오?” 하고 더 물었다는데, 사슬터에서 나온 지 아홉 달인 할아버지들한테 굳이 이렇게 물어봐야 했을까요?
할아버지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다가 억센 목소리로 “우리에겐 이제 사상 논쟁은 없애기로 했소. 당신은 내게 사상 논쟁을 하자고 그러는 셈이오?” 하고 되물었대요. “우리에게 있어 온 것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였고 일제 때부터 통일 운동을 하고 독립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반공법으로 공산주의로 몰아넣었듯 해방 뒤에도 통일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라느니 ‘빨갱이’라느니 하며 ‘무슨 주의자’를 만들지 않았소.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합시다. 이제 우리 통일 이야기를 합시다. 공산주의 통일도 자본주의 통일도 아닌 오직 평화 통일을 이루는 이야기라면 하고, 아니면 돌아가 주시오.” 하고 덧붙이니 공안검사는 입을 다물었대요. 그리고 “우리는 7·4 공동성명 때 했던 말처럼 자주·평화·민족대단결 통일을 말하고 싶을 뿐이오,” 하고 덧붙인 뒤에, “준법서약서를 쓰고 감찰보호를 하겠다면 그냥 감옥에 있겠다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들을 풀어 주었소. 우리들을 풀어주고 이제 와서 또 이렇게 묻는 까닭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공안검사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책시렁을 살핍니다. 귀로는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책을 헤아립니다. 두 손에는 새로 마주하는 책을 쥡니다. 《우리교육》 92년 12월호에 93년 2월호를 고릅니다. 《함께여는 국어교육》 14호에 16호를 고릅니다. 《골리앗 상공에서 쓴 비밀일기》(김현종, 노동문학사, 1990)를 보고, 《식민지 밤노래》(심산, 세계, 1989)를 보며 《폴란드 민족시집》(김정환 옮김, 실천문학사, 1982)하고 《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김시천, 온누리, 1993)를 봅니다.
신나게 짊어지고 온 책꾸러미를 내려놓은 몸에 가벼운 책을 아름아름 꾸립니다. 그리고 《쌀밥의 힘》(고재종, 푸른나무, 1991)을 집어서 읽습니다.
땅은 그 위에 씨가 뿌려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땅이 된다. 씨뿌려지지 않는 땅엔 곧장 쇳덩어리나 가시덩굴이 들어차게 되어 그야말로 이름만의 땅이 되고 만다. (17쪽)
책에 흐르는 빛이란, 땅에 씨를 뿌리며 가꾸고 거두는 손길이리라 느낍니다. 땅에 씨를 뿌린다면, 종이에 이야기를 뿌려서 가꾸고 거둡니다. 흙을 짓는 손길로 새롭게 거두는 기쁨이 있듯이, 종이에 짓는 마음길로 새롭게 나누는 보람이 있습니다.
〈한백〉 할아버지는 헌책 곁에 헌옷하고 헌신을 같이 놓습니다. 헌책을 모으거나 주으러 다니노라면 버려진 헌옷이며 헌신이 참 많더랍니다. 더 쓸 수 있을 텐데 버려지는 헌옷하고 헌신이 애틋하다며, 차곡차곡 거두어 손질한 뒤에 가지런히 같이 놓는다는군요. 임자가 있으면 책도 옷도 신도 제자리로 가겠거니 여긴다고 합니다.
하나되는 길이라는 통일이란 무엇일까요. 정치나 경제란 무엇일까요. 꼭두지기가 나서야 이루는 한덩어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먼저 이 마을에서, 이 자리에서, 이 터전에서 우리가 스스로 따사로운 눈빛으로 어우러지는 길에 선다면, 차근차근 어깨동무를 하리라 여깁니다. 너는 나요 나는 나이기에, 서로 손을 잡아 우리가 되어요. 뭉뚱그리는 우리가 아닌, 너랑 내가 다 다른 삶이며 사랑으로 살림하다가 만나서 손을 잡는 우리입니다.
“여, 젊은이 책짐도 무겁게 선물로 가져왔는데 사진기 있으면 사진도 좀 찍고 그러지?” “아니요. 다음에 와서 찍을게요. 꼭 오늘 찍어야 하지는 않는걸요. 다만, 할아버지가 쓴 저 붓글씨는 찍어도 될까요?” “붓글씨? 아 저 글씨? 저 글씨는 습작이라 부끄러운데. 그래도 찍고 싶으시다면 찍으시게.”
(뒷말 : 그런데 이 말을 남기고 다음에 찾아오려고 할 무렵에 〈한백의 집〉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이곳 사진을 따로 남기지 못했다. 사슬터에서 나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문을 연 가게를 잇는 달삯을 치르는 일이 만만하지 않기도 했고, 몸이 힘들거나 아파 문을 날마다 열기 벅차기도 했겠지. 이제 할아버지들은 모두 별나라에 계시리라. 굵고 짧게 문을 열고 자취를 감춘 〈한백〉 할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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