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진화론·창조론 : (한국) 학교에서는 ‘진화론’ 하나만 가르치면서 ‘창조론’은 엉터리라고 몰아붙인다. 문득 궁금해서 사전을 뒤적이니, 사전에도 ‘진화론·진화설’은 올림말로 다루되 ‘창조론·창조설’은 아예 없다. 가만 보면 (한국) 학교는 외곬로 치닫는 교과서에 갇히기 일쑤이다. 아직 한국 학교만 양자물리학조차 거의 안 가르치다시피 하는데, 따지고 보면 못 가르칠 만하지 싶다. 양자물리학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길잡이라면 아이들한테 엉터리로 들려주거나 뜬금없는 지식을 퍼뜨릴 테니까.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모두 ‘론(論)’이다. 그저 ‘말’이나 ‘생각’일 뿐이란 소리이다. 나는 ‘진화론’을 거의 믿지 못한다. 왜 못 믿는가 하면, 아무리 보아도 사람들 터전은 조금도 ‘진화·진보’를 못하지 싶으니까. 보라, 이 나라가 얼마나 진화하거나 진보했는가? 이 꼴을 진화나 진보로 여길 만한가? 그렇게 진화나 진보를 잘했기에 한국은 지구에서 자살율이 끔찍하게 높은가? 게다가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가장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가 한국인데, 무슨 얼어죽을 진화나 진보인가? 배움터가 배움터답게 나아가도록 틀을 마련하는 우두머리란 보이지 않는다. 고작 대학입시 틀을 바꿀 뿐이다. 대학교 앞에서 줄세우기 하는 데에서 멈출 뿐인 이 나라 얼마나 진화하거나 진보했는가? 독재자 몇을 끌어내렸더라도 ‘탈을 쓴 새로운’ 독재자가 바보짓을 그대로 잇는다면, 이는 진화도 진보도 아니라고 느낀다. 그렇다고 ‘창조론’을 믿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하나, “모든 삶은 우리가 스스로 지어서 누린다”고 느낀다. 내가 스스로, 네가 스스로, 우리가 스스로, 이 모든 지구라는 별을 지어서 저마다 다른 삶을 누리지 싶다. 그러니 거듭거듭 생각한다. 어떤 나라를 짓고 싶니? 어떤 별을 짓고 싶니? 어떤 보금자리를 짓고 싶니? 어떤 나다운 사람으로 나아가는 사랑을 짓고 싶니? 2019.10.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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