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이야기
말 좀 생각합시다 68
삶님
말은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요? 어떤 자리에 어떻게 써야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자리에서 짓지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말은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살림을 가꾸고 지은 사람이 저마다 제 삶자리에 걸맞게 하루를 살아가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굳혀서 붙이는 소리이지 싶어요. 처음에는 그저 떠도는 소리였을 테지만, 이 소리에 이름을 붙이기에 뜻이 깃들고, 뜻이 깃들면서 말이라는 모습으로 나누는 새로운 숨결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소리까지 지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숱한 사람들이 새로운 소리를 잔뜩 지었고,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하늘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소리를 새롭게 지었으니, 굳이 소리를 더 짓지 않아도 될 만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엄청나게 널린 소리를 잘 살피고 엮어서 말을 새로 지으면 넉넉해요. 이미 있는 말 여럿을 새롭게 엮어 한결 새로운 낱말을 짓습니다.
한국 한자말로는 ‘식구(食口)’요, 일본 한자말로는 ‘가족(家族)’이라 이르는 사이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한집사람’을 가리킬 낱말이 따로 없어도 되었기에 굳이 텃말을 안 지었구나 싶은데, 이를 글로 나타내고 싶던 사람이 있어 한자를 따서 ‘식구·가족’ 같은 낱말을 엮었구나 싶어요.
저는 이 한자말도 저 한자말도 그리 안 내킵니다. 밥을 먹는 사이란 뜻도 좁고, 씨받이가 모인 집안이란 뜻도 좁구나 싶어요.
이러다가 삶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서 이녁한테 ‘곁님’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저랑 삶을 함께하는 사람도 저를 ‘곁님’이라 부를 수 있어요. 한말(한국말)은 성별이나 나이나 자리를 안 따지고 누구나 아우르는 결이라, ‘아내·남편’을 넘어선 ‘곁님’이란 말을 짓고서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이란, 삶을 함께 짓고 누리는 사이일 테니 ‘삶 + 님’ 얼거리로 ‘삶님’이라 할 만합니다. 한집에서 함께 삶님이에요. 사는 사이는 ‘삶님’이라면, 살림하는 사이는 ‘살림님’이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