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잡지에 어린이책 추천하는 일을 하면서 몇 군데 출판사에서 보내주어 억지로 떠안게 된 그림책 예닐곱 권을 들고 헌책방에 갑니다. “저한테는 쓸모가 없지만, 이 책을 좋다고 느끼며 사 가실 분이 있겠지요?” 하면서 드립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저희는 이렇게 드릴 수 있어요.” 하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십니다. “어, 저는 이 책을 거저로 받은 책인데요. 여기 보셔요. ‘드림’ 도장 찍혀 있잖아요.” “저희도 책을 그냥 안 받아요.”

 하는 수 없이 만 원짜리 한 장을 받습니다. 책방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일본 손바닥책 있는 자리를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예전에 왔을 때 돈이 모자라서 못 산 몇 가지 책을 고르려고. 무샤고오지 사네야쓰라는 분이 쓴 《人生雜感》이라는 책, 구와바라 타케오라는 분이 쓴 《文學入門》이라는 책, 일본 어린이 노래를 살핀 책, 병상에서 아흔아홉 날 동안 싸우며 적어내린 수기를 엮은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분이 쓴 《新 文章讀本》, 오에 겐자부로라는 분이 쓴 《小說のたくらみ, 知の樂しみ》라는 책 들을 고릅니다. 책값은 8000원. 어, 그래도 2000원이 남네.

 저로서는 ‘버린다’는 책을 들고 갔지만, 외려 책 여러 권과 돈 2000원까지 얻고 돌아나옵니다. 오늘은 맑은 햇살이 내리쬡니다. 어제 비가 좀 내린 뒤인지 하늘이 살짝 맑네요. 그동안 하늘에 잔뜩 끼어 있던 먼지띠 가운데 얼마쯤이 씻긴 듯합니다. 그러면 씻겨진 먼지들은 어디로 갈까요. 흙으로? 바다로? 내로? 먼지띠는 다시 땅으로 돌아갈까요?

 문득, 우리 사는 이 땅에 가랑비가 자주 내려서, 이 먼지띠를 틈틈이 씻어 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먼지띠를 만들지 않는 삶으로 몸가짐을 바꿀 우리들 사람이 아니기에, 가끔이나마 먼지띠 살짝 걷힌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우리한테 참으로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배울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4340.5.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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