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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 ㅣ The Unbelievable Top Secret Diary
에머 스탬프 글.그림, 양진성 옮김 / 푸른날개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13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
에머 스탬프
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4.18.
오리 말을 들어 보니 농장 아저씨에게는 나 같은 돼지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 이곳으로 끌려와서 다시는 살아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40쪽)
나는 농장 아저씨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사랑받는 멋진 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농장 아저씨는 내게 밥을 주고, 내 등을 긁어 주고, 날 쓰다듬어 주면서 줄곧 날 잡아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41쪽)
오리는 농장 아저씨들이 돼지 잡아먹는 걸 엄청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심지어 오리도 먹는다고 했다. 농장 아저씨들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인가 보다. 도대체 오리를 왜 먹고 싶어 할까? (104쪽)
돼지가 어떤 짐승인지 찬찬히 짚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돼지도 닭도 소도 오리도 저마다 집에서 돌보면서 지내던 살림이 아닌, 어느덧 가게에 살덩이로만 놓인 모습으로 으레 마주하는 오늘날인데, 살아서 움직일 뿐 아니라, 마음이 있고, 생각이 춤추며, 홀가분하게 하늘을 그리는 숨결인 돼지를 떠올릴 사람은 얼마나 되랴 싶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라든지 소고기라든지 닭고기라든지 오리고기처럼, 우리는 매우 쉽게 ‘-고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바다에 사는 숱한 이웃을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물 + 고기’ 같은 이름을 붙여요. 물에 사는 모든 목숨을 그저 먹을거리인 ‘고기’로만 바라보는 셈입니다.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에머 스탬프/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는 ‘고기돼지’가 될 삶인 줄 까맣게 모르는 채 살던 ‘돼지’가 어느 날 비로소 제 앞길을 깨닫고는 어떻게 해야 안 죽을 수 있는지 헤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지구라는 별을 떠나 다른 별로 날아가면 걱정없이 지낼 만하려나 하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그립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나오는 돼지는 들돼지 아닌 집돼지인 터라, 스스로 들판을 달리고 숲을 누비면서 삶길을 찾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못합니다. 누가 먹이를 챙겨 주어야 하고, 집도 내주어야 한다고만 여겨요. 스스로 일어설 줄 모르고, 길든 채 ‘살아남기’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길든 집돼지이니 들돼지나 숲돼지로 거듭나는 길을 아예 생각조차 못할 만해요. 그러나 스스로 타고난 삶길을 다시 돌아본다면, 새로 생각하면서 찾는다면 다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학교에 가야만 하거나, 졸업장을 따야만 하거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만 하지 않습니다. 삶길을 찾으면서 기쁘게 누릴 노릇입니다. 동화책 하나가 모든 대목을 짚기 어려울 수 있으나, 익살에만 너무 눈길을 맞추느라 정작 삶길은 거의 슬그머니 눙치니 아쉽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