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노래] 외국사람


1994.4.6. “미국사람이에요?” 버스를 기다리는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묻는다. 옆에서 아이 아버지가 “야, 그런 말은 묻는 게 아니야.” 하고 말하지만, 아이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내 말을 기다린다. 나는 빙긋 웃으며 “우리 아가씨, 내가 미국사람이라면 한국말로 물어보면 못 알아들을 테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잘 하는 미국사람도 있어요. 아저씨는 별나라에서 왔어요.”


2001.5.4. “웨어 아 유 컴 프럼?” 매우 엉성한 영어로 누가 나한테 묻는다. 나는 “와이?” 하고 대꾸한다.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든,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이가 왜 궁금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외국사람을 처음 보았기에 그 외국사람이 가는 길을 멈춰세우고서 “웨어 아 유 컴 프럼?”이라고 물어도 되는가?


2009.6.7.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저는 푸른별에서 온 사람입니다.” “네?” “저는 다른 나라에서 오지는 않았고요, 다른 별에서 왔습니다.” “어, 어, 어.” 내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 적어도 영어로 물어보면 좋겠다. 이제 이런 물음이 지긋지긋해서, 아니 지긋지긋해 하지 않기로 생각하면서, 즐겁게 생각하자고 여기니, 어떻게 대꾸하면 될는지 떠올라서 ‘나는 다른 나라가 아닌 다른 별에서 온 사람입니다’ 하고 대꾸를 하자고 생각한다.


2019.8.30. “헬로우, 테이크 픽쳐 오브 미. 예스? 원 모어? 투, 쓰리.” 나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서 그이가 내미는 사진기를 받아서 사진을 찍어 준다. 나더러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분은 내가 옆에 있는 사람하고 ‘한국말로 말한 모습’을 보았는데도, 굳이 영어로 묻는다. 그이는 그이 딴에 점잖게 묻는 셈일는지 모르나, 참 멋도 모르는 셈이다. 외국 아닌 한국에서라면 한국말로 물어볼 노릇 아닌가. 그리고 나 말고 옆에 다른 사람도 많았는데,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한국말로 물으면 될 테고. 어쩌면 영어를 써 보고 싶어, 그이 눈에 ‘한국사람처럼 안 보이는 사람’인 나를 부러 콕 집어서 영어를 읊었는지 모른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