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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ㅣ 창비시선 337
최정진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평점 :
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7
《동경》
최정진
창비
2011.11.10.
작은아이하고 이웃마을로 걸어갑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놓쳤거든요. 찻길을 걸어 봉서란 이웃마을로 갈 수 있으나, 논둑길을 걸어 황산이란 이웃마을로 갑니다. 가는 길에 여러 소리를 듣습니다. 밀잠자리 날갯짓 소리, 검은물잠자리 날갯짓 소리, 이삭이 패는 소리, 바람 따라 나락줄기 스치는 소리, 개구리 노랫소리, 풀벌레 노랫소리, 멧새 노랫소리, 여기에 구름이 흐르는 소리하고, 빗물이 듣는 소리를 누립니다. 이러다가 비가 쏟아져요. 아이가 “우산 안 가져왔는데.” 하며 걱정하기에 “구름한테 대고 얘기하렴.” 하고 말합니다. 비구름은 저한테 마음으로 “곧 지나갈게.” 하고 속삭입니다. 비구름 속삭임을 아이한테 들려주고서 한동안 늦여름비를 실컷 맞으니 개운합니다. 비란 참 놀라운 숨결이에요. 《동경》이란 노래꾸러미를 내놓은 노래님은 퍽 젊다 싶은 나이에 이 노래를 갈무리합니다. 그러나 젊든 늙든 저마다 부르려는 노래가 있으니 글로 이야기를 옮기겠지요. 어릴 적부터 마음으로 스민, 차근차근 자라면서 마음으로 본, 어느덧 스스로 서서 살림을 꾸려야 하는 때에 새삼스레 마음으로 깨달은, 여러 이야기를 읊습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노래님이 앞으로 걷는 길에 즐거운 씨앗이 되기를 빕니다. ㅅㄴㄹ
발을 만지는 게 싫으면 / 그때 말하지 그랬어 / 외로워서 얼굴이 굳어가잖아 / 너의 집 앞에 다 왔어 / 창문을 열어봐 (첫 발의 강요/8쪽)
세탁소가 딸린 방에 살았다 방에 들여놓은 다리미틀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내 몸의 주름은 구김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다림질밖에 몰랐다 엄마의 품에 안겨 다려지다 어느날 삐끗 뒤틀렸는데 세탁소 안에서 나는 구부정하게 다니는 아이라고 불렸다 (기울어진 아이 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