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운드의 복음 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명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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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494


《1파운드의 복음 3》

 타카하시 루미코

 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6.30.



“너, 그렇게 복싱이 좋아?” “아.” “감량하고, 맞고, 질 때도 있어. 그런 괴로운 부분도 포함해서,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다고.” (44쪽)


“다시 한번 아빠, 아버지한테 부탁해 보려고. 역시 나한테 맞는 것 같아. 지금은 재미있는 게 다긴 하지만, 힘들어져도 하타나카 씨처럼 복싱을 계속 좋아할 자신이 있어.” (54쪽)


‘이기든 지든, 있는 힘을 다해야 해. 그런데 난 형편없는 시합을 …….’ (102쪽)


‘나만을 바라봐주고 있어. 왜일까요, 주님. 저는 그것이 기쁩니다. 이분의 마음에 대답해 주고 싶어요.’ (210쪽)



《1파운드의 복음 3》(타카하시 루미코/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을 보면, 왜 굳이 권투라고 하는 길을 좋아하는가를 묻고 대꾸하는 이야기가 곳곳에 흐른다. 그렇다. 왜 굳이 ‘권투’일까?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권투’이든 ‘요리’이든 ‘교사’이든 ‘소설가’이든 뭐가 다를까? 쉽게 해내거나 뜻을 이룰 만한 길이 있을까? 어느 길을 가든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고, 참말로 주저앉고 마는 때도 있다. 이때에 어떡해야 할까? 그토록 좋아하던 길인데 주저앉고 말아서 이제 두 손을 들려는가, 아니면 주저앉는 슬픈 밑바닥까지 고루 껴안으면서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웃는 길을 가려 하는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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