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칠색 잉꼬》 1∼7 / 테즈카 오사무, 학산문화사, 2011∼2012



푸른목소리 : 대학교로 가느냐, 취업을 하느냐, 갈림길에 섰어요.



  하고픈 일, 나아가고 싶은 길, 부딪히고 싶은 꿈, 이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선뜻 마음으로 붙잡아서 한발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푸름이 여러분 어버이한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한다면, 스스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가 하고 돌아보면 좋겠어요.


  우리 앞길을 ‘쉽게’ 생각해도 되느냐고 되물을 만하겠는데, 거꾸로 생각해 봐요. 우리 앞길을 굳이 ‘어렵게’ 생각해야 할까요?


  쉬운 보기부터 생각해요. 자, 오줌이 마려우면 어쩌나요? 말도 안 하고 참나요? 똥이 마려우면 어쩌나요? 입을 꾹 닫고 참나요? 오줌이나 똥이 마려운데 말을 안 하고 참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몸이 힘들고, 나중에는 아프기까지 해요. 똥오줌이 마려운 일은 부끄럽지 않고, 부끄러울 수도 없어요. 그때그때 풀 뿐입니다.


  배고플 적에 어떻게 하나요? 졸릴 적에 어떻게 하나요? 다리가 아프거나 목이 마를 적에 어떻게 하나요? 덥거나 추울 적에는요? 요새는 학교마다 학교옷이 있는데, 봄가을에도 더운 날이 있고, 여름에도 추운 날이 있고, 겨울에도 포근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어느 달부터 어느 달까지 ‘이 옷’만 입으라고 시킨다면, 더위나 추위는 안 따지고서 그대로 따라서 입어야 할까요?


  푸름이 여러분, 배고프면 스스로 지어서 먹든, 밖에서 사다가 먹든, 전화를 걸어서 갖다 달라고 하든, 챙겨서 먹을 노릇입니다. 누가 밥을 다 지어서 차려놓은 뒤에 “자, 밥을 먹으렴.” 하고 불러야만, 그때까지 배고파도 꾹 참아야만 하는지 묻고 싶어요. 다리가 아픈데 억지로 참으며 더 걸어야 하는지도 묻고 싶어요. 왜 끝까지 참아야 할까요? 아프거나 힘들면 쉬었다가 가거나 푹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걷는 길이 멀면 택시를 부른다든지, 그냥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대학교하고 취업이라는 갈림길에 서면 선뜻 어느 하나를 고르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면 둘 다 고르거나 둘 다 고르지 않기로 해봐요. 서두를 일이란 없습니다. 둘 다 해보거나 둘 다 안 해보면 뜻밖에 스스로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도 들어가고, 배움삯을 푸름이 여러분이 여러 가지 곁일을 해서 벌어 보기로 해봐요. 이렇게 여러 달 하노라면, 또 여러 해 하노라면 ‘이 둘 가운데 내 마음이나 몸에 걸맞는 길’이 어느 쪽인가를 매우 또렷이 알아챌 수 있습니다. 때로는 푸름이 여러분이 ‘대학교·취업’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도 몸이 버텨내기도 해요. 그때에는 “아, 나는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씩씩하고 멋지네?” 하고 깨닫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아직 모르기 쉽습니다만, ‘대학교·취업’을 둘 다 하는 젊은이가 제법 많습니다. 이 젊은이는 무척 씩씩하면서도 즐겁게 노래하면서 두 길을 같이 가요. 그리고 서른 살이나 쉰 살이나 일흔 살 나이에도 ‘돈을 버는 길·새로 배우려고 책을 꾸준히 사서 읽고 강의를 틈틈이 챙겨서 듣는 길’을 가는 분도 꽤 많아요.


  그런데 ‘둘 다 안 해보는 길’도 이야기했습니다. 왜 둘 다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어쩌면 두 길 모두 푸름이 여러분한테 안 맞을 수 있거든요. 대학교도 취업도 아닌 새로운 길이 여러분한테 있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냥 ‘우리 집안 가게(자영업)’를 물려받는 길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이나 짐승우리를 돌보는 길, 이른바 농사꾼·축산업자가 되는 길이나,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글쓰기·그림그리기(작가)나 가게지기(자영업)나 농사꾼·고기잡이를 두고 ‘취업’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이런 길도 있답니다. 무엇보다도 대학교·취업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서 반 해나 한 해쯤 여행을 다니거나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지켜보면요, 아주 차분하게 두 길 가운데 한 쪽이 푸름이 여러분 마음에 깊이 꽂힐 수 있어요. 꼭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에 길을 골라야 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에 길을 골라도 됩니다. 스물두 살이나 스물다섯 살에 길을 골라도 좋고, 서른 살에 이르러 비로소 길을 골라도 되어요. 어느 길이든 다 같아요.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날 적에 길을 갈 뿐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밝혀 본다면, 저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대학교를 골랐습니다. 그러나 대학교는 제가 바라던 배움길이 아닌 줄 알아차렸어요. 대학교 강의를 듣는 첫날부터 느꼈고, 한 해 동안 아주 짙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교를 깨끗이 그만두기로 했는데, 이에 앞서 두 학기 동안 신문방송학과 네 해치 강의를 몽땅 들었어요. 네 해치 강의라지만 두 학기로 넉넉하던데, 두 학기 아닌 한 학기나 한 달 만에라도 ‘대학 네 해치 공부’를 스스로 마칠 수 있겠더군요.


  대학 배움길을 스스로 끊었으니 고졸 배움끈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혼자서 제 삶길을 배우기로 했고, 그렇게 혼자 조용히 노래하면서 이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새롭게 제 꿈길을 여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렇다고 또래보다 늦게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물여섯 나이에 국어사전 편집장 일을 맡았어요. ‘부원’이 아닌 ‘부장’으로 말이지요. 푸름이 여러분, 무엇보다 마음소리에 따라서 새길을 가 보셔요. 이러면서 ‘즐겁게 걸을 길’ 하나만 차분히 바라보셔요.


+ + +


  “대학교로 가느냐, 취업을 하느냐, 이런 갈림길에 선” 푸른벗한테 《칠색 잉꼬》라는 만화책을 읽어 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보석 훔치기를 하는 사람을 다루는 《칠색 잉꼬》인데, 이 만화를 빚은 테즈카 오사무라는 분은 ‘만화 하느님(만화의 신)’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을 식민지로 삼을 무렵, 일본에서 군수공장에 징용을 가야 했대요. 일본사람도 징용에 징병을 갔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군수공장에서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몰래 뒷간에 숨어서 뒷간 벽에 만화를 그리면서 딴짓을 했대요. 이러다 들통나면 흠씬 얻어맞았다지요.


  일본사람이라지만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끔찍히 싫어한 이분은 일본이 전쟁에서 진 일을 몹시 반겼고, 그 뒤로 일본 어린이·푸름이한테 ‘전쟁이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겠다’는 뜻으로 끝없이 새로운 만화를 그렸어요. 《우주소년 아톰》이나 《블랙잭》이나 《불새》나 《밀림의 왕자 레오》나 《리본의 기사》나 《아돌프에게 고한다》 같은 만화에서 이런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손에 붓을 쥐고서 만화를 그리셨대요. 그런데 이분은 연재만화도 열 몇 가지에, 만화영화까지 그렸는데, 틈을 쪼개어 영화를 새벽부터 밤까지 1분도 안 쉬고서 보았을 뿐 아니라, 이 바쁜 하루를 더 쪼개어 의학박사 논문까지 써내어 학위까지 따냈어요.


  얼핏 ‘너무 대단한 사람’을 얘기하느냐 물을 수 있을 텐데요, 이분이 대단하다면 남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하고픈 일만 꿈길로 바라본 대목이라고 느껴요. 우리도 남 눈치 아닌 우리 꿈길만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갈림길에서 씩씩할 수 있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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