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거쳐도 (2019.6.7.)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 032.766.9523



  저한테 책집은 책만 있는 집이 아닙니다. 책이 있어 포근한 집이요, 책이랑 같이 있으면서 마음을 넉넉히 추스르는 집입니다. 그런데 여태 어느 책집에 살짝 들렀다 하더라도 빈손으로 나간 일이 없습니다. 아주 짧게 1분만 들렀다 가더라도 한두 자락은 손에 쥐고서야 돌아섭니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될 수 있으나, 책집에 깃들면 저를 반가이 바라보는 뭇책 눈길을 느껴요.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살필 수는 없어, 뭇책한테 ‘너희를 모두 쓰다듬으면서 읽고 가지는 못한단다. 너그러이 헤아려 주렴’ 하고 속삭여요. 이러면서도 두 자락쯤은 손에 쥐려 합니다.


  그림책 《Arthus's perfect christmas》(Marc Brown, little brown, 2000)를 집어듭니다. 곁님이 아이들하고 한동안 같이 보던 만화영화를 담아내었어요. ‘아서’ 그림책이 있는 줄 알았되, 따로 장만하자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뜻밖에 코앞에서 보았어요. 딱 1∼2분, 또는 3∼4분쯤 머물 수 있던 헌책집 〈아벨서점〉에서 이 그림책을 만나니 시골집 곁님하고 아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서 그림책 옆에 《Clifford's good deed》(Norman Bridwell, scholastic, 1975)가 꽂혔어요. 노만 브리드웰 님 ‘크고 빨간 개’ 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클리포드 이야기가 흐르는 얇고 가볍지만 속은 알차고 두툼한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보이면 언제나 기쁘게 집어들어요.


  예전에는 클리포드 그림책을 보기 매우 어려웠는데, 나날이 ‘영어 그림책’을 읽히는 분이 늘고, 또 영어 그림책 가운데 ‘아직 한국에는 안 알려지거나 덜 알려졌어도 세계 명작’으로 꼽히는 그림책을 읽히며 영어를 가르치는 분이 늘기에, 요새는 헌책집에서 클리포드 그림책을 드문드문 만납니다.


  책집하고 더없이 먼 두멧시골에서 살다 보니 인천까지 마실을 오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 해에 한 걸음을 하기도 빠듯하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지나고 이튿날에는 배다리 책방골목에 사진을 걸고, 이튿날 아침에 책집 아주머니한테 잘 계시라고 말씀을 여쭈고 돌아갈 테니, 짧은 틈이라도 이곳에서 몇 가지 책을 더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영어 그림책 두 자락으로 마음이 부풉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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