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3.26.
《십일분의 일 4》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4.8.25.
어제는 동강면으로 벌꿀을 두 병 장만하러 다녀오고, 오늘은 고흥읍으로 나가서 산양젖 두 병을 받으러 다녀온다. 어제오늘 두 병씩 등짐에 짊어지는데, 말이 두 병이지 퍽 묵직하다. 잘 먹고 신나게 노는 세 사람을 헤아리면서 벌꿀이며 산양젖을 받아오는 길은 힘이나 돈을 꽤 써야 하지만 보람이 있다. 제대로 마음을 들여 지은 살림을 찬찬히 누릴 수 있으니 반갑다. 세 사람이 신나게 즐기느라 비록 나는 거의 한 입도 못 즐기지만, 마음으로 즐기자고 여긴다. 마음으로, 눈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인다고 할까. 《십일분의 일》 네걸음을 읽는다. 열한 사람이 한 사람처럼, 또 한 사람이 열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더 헤아리면 ‘열하나’라는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들판을 달리는 사람은 열하나이지만 않다. 뒤에서 기다리거나 받치는 사람이 있고, 맞붙는 쪽에도 똑같은 사람들이 있다. 들판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며,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내는 사람도 있지. 그야말로 숱한 사람들이 다 다른 길에 서면서 다 같은 마음으로 있다고 할까. 얼핏 들판은 큰 자리 같으나, 지구로 보면 작은 하나이다. 또 지구란 별도 온누리로 헤아리면 작은 하나이다. 우리는 어떤 하나로, 어떤 덩이로, 어떤 빛으로 서는 넋일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