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판

서대문 로터리라는 데, 그 큰길가 건널목에는 먹을거리를 파는 아주머니 한 분 계시고 건너쪽에도 차를 몰고 와서 대놓고 먹을거리를 파는 아저씨가 한 분 계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늘은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듯. 그 자리를 통째로 차지해서 쓰지는 않겠지만 늘 그곳에 와서 장사를 하던 아저씨는 저보다 일찍 와서 판을 벌여 놓은 아저씨 앞에서 장사를 못 하게 막으면서 무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은행 일을 보고 와서 다시 그 앞을 지나갈 때까지도 마찬가지. 오늘 일찍 와서 자리를 잡은 분은 장애인이고 퍽 젊다. 나는 길바닥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곧잘 사먹기 때문에 그 아저씨가 파는 1000원짜리 겹빵으로 아침을 삼으려고 했다. 싸움이 한창 벌어진 판에도 겹빵을 하나 사서 손에 쥔다. 부디 부드럽게 다툼이 잦아들기 바라면서 헌책집 한 군데를 들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열두 시 살짝 넘은 때인데, 아침에 이녁 자리라고 벅벅 우기는 그 아저씨가 끝내 장애인 아저씨를 몰아냈다. 하나에 천 원짜리 겹빵은 하루에 몇 조각을 팔아야 하루 품삯이나 살림거리가 될까. 자리값…… 권리금…… 이런 게 있겠지. 길바닥이 아저씨 땅도 아주머니 땅도, 또 그 누구 땅도 아닐 터이니, 누가 먼저 와서 판을 벌인다 해도 서로 도우면서 장사를 할 수는 없으랴 싶다만, 한참 거친말을 받아먹어야 한 장애인 아저씨는 다른 곳에서 장사판을 잘 잡아서 하루를 열 수 있었을까. 2001.9.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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