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낼 수 있을까

오늘 어느 어린이책 출판사 편집 일을 하는 분을 만났다. 내가 써온 우리말 이야기를 좋게 보시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좋은 길잡이책이자 교재 구실을 할 수 있는 이야기책을 엮어 보면 어떨까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말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곳은 그동안 서너 곳쯤 된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아예 대꾸도 하지 않으면서 물리치곤 했다. 여태 말이 들어온 출판사는 하나같이 책장사로 퍽이나 좋지 못한 책을 내는 곳들이어서. 얼마 앞서 연락이 온 곳은 어린이책을 내는 곳 가운데 믿음직스럽다고 보는 몇 곳 가운데 하나였기에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만났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했을까? 하루 만남으로 서로가 모두를 다 알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꽤 튼튼한 마음으로 책을 엮고자 애쓰는 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분도 그분이 몸담은 일터 살림이 있는 터라 좀더 나은 책을 엮도록 돈을 들여야 한다는, 자료구입비가 꽤 든다는 대목에서는 얼마만큼 발을 빼시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 그래도 이분한테서 믿음직한 어떤 모습을 보았기에 내가 좀더 애쓰고 생각도 가다듬고 일손도 부여잡아서 이곳에서 책을 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말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이미 많이 나왔고 가짓수도 많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리다가는 안 좋기도 할 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너무 두루뭉수리로 어중이떠중이 책이 되기 쉽다. 테두리를 뚜렷하게 줄여야 하며, 이야기도 잘 추슬러야 한다.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어떻게 받아들일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9월부터 서울하고 충주를 오가며 이오덕 어른 글갈무리를 하지만, 내 몸은 ‘반 실업자’인 터라 돈을 벌 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살림집을 얻으려고 빌린 돈도 갚아야 하고. 그러나 아무 곳에서나 아무 책을 낼 뜻은 없기에 아직 내 책은 하나도 내지 않았다. 여태 다른 사람 책을 지어서 엮거나 팔아 주는 일만 했다. 아름다운 책을 꾸준히 내려는 마음으로 책을 짓는 출판사에서 찾아온다면 굳이 손사래칠 까닭이 없지만, 너무 쉽게 쓰면 안 되겠지. 책을 내더라도 짧은 숨이 아닌, 긴숨을 쉬어야겠지. 그러니까 책에 내 생각만 밀어붙이는 그런 글쓴이가 아니라, 책이 책다운 꼴로 되도록 ‘여태 편집자로 얻고 쌓은 슬기’을 담아서 같이 일구어 나가는 그런 책꼴이 되도록 해 보고 싶다. 우리가 이 별에서 즐겨 찾아서 보는 책은 으뜸가는 글쓴이나 편집자가 모여서 짓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재주나 솜씨는 으뜸이 아니어도, 마음이 착하거나 고운 사람이 사랑스러우면서 훌륭한 책을 짓는다고 여긴다. 내 책을 사읽는 분이 적더라도 한 해에 5000∼1만 권쯤은 새로운 이웃님을 만날 수 있도록 쓰고 엮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늘 더 애쓰고 배워서 담아야겠지. 오늘은 사진기 렌즈를 바꾸느라 자그마치 100만 원을 썼다. 그렇지만 이제 그 옛날 렌즈로는 더는 쓸 수 없다. 아주 망가져서 손질도 안 된다는걸. 오늘도 모레도 앞으로도 사진은 꾸준히 찍을 텐데, 하루라도 제대로 된 좀더 좋은 렌즈로 써야 이제부터라도 찍을 사진을 잘 간수하지 않겠는가. 등골이 좀 휘고 말았지만, 휜 등골은 허리띠를 졸라매어서 채워나가야지. 좀더 힘차게 살자. 2003.10.3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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