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우리
아랫칸에 새로 옮겨온 집 둘째 아이는 일곱 살. 이 아이는 여러 가지 짐승을 기르네. 서울 한복판인 이곳 종로구 평동 적산가옥 나무집에서. 오래된 나무집이나 적산가옥이라 옆에는 우쭉우쭉 빌라가 솟아 햇볕이 잘 비치지도 않는 이 자그마한 집에서. 토끼 여러 마리, 병아리 여러 마리. 이야 놀랍다. 너 참 대단하구나. 그런데 어느 날 중병아리 둘 가운데 하나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또 어느 날, 새장에 살며 새벽 같은 아침에 내가 일 나가고 밤 같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적마다 뺙뺙거리며 슬피 울던 중병아리도 사라졌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나비 보세요.” 하며 “이제 나비만 남았어요” 하며, 토끼랑 병아리는 다 죽었다고 말했다. 불쌍한 병아리와 토끼 들. 이 목숨들은 죽어서도 묻힐 흙 없을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저희 삶길을 마쳤구나. 병아리는 새장에 내가 손가락을 집어 넣고 그러면 내 손가락에 붙어서 뺙뺙거리니 차마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그 중병아리는 저와 함께 자라던 짝을 잃고, 다른 새끼병아리와 사는 곳이 갈라진 채 지내다가 제 어머도 마지막으로 보지 못하고 살다가 떠났다. 이런 말을 일터에 가서 했더니 “짐승들이 뭔 그런 걸 다 아느냐”고 하더만, 나는 이 작은 숨결을 보면서 그렇게 느낀다. 이 숨결도 혼자서 쇠우리에 갇혀서 사람이 주는 모이만 받아먹어야 할 적에, 이 모이를 받아서 먹고 싶겠는가? 병에 갇히고 만 나비도 그렇다. 병에 갇혀 날갯짓을 할 수 없는 나비도 머지않아 이미 죽은 토끼와 병아리 뒤를 따르리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갇히면 숨은 끝이다. 2001.6.1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