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밤마실로 헌책집에 간다. 내가 사는 종로구 평동에서는 걸어서 조금만 가면 독립문 영천시장이 나오고, 영천시장 끝자락에 헌책집 〈골목책방〉이 있다. 〈골목책방〉 아저씨는 밤 열두 시까지 문을 열어 놓으시니, 밤빛이 깊어 가는 때에도 살살 밤마실을 다닌다. 또는 이화여대 가는 길목, 구름찻길 옆자락에 있는 〈문화책방〉도 늦게까지 문을 여시기에 그곳으로 밤마실을 가지. 퍽 짧은 길인데, 오늘은 어디로 갈까 어림하다가 〈문화책방〉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전경 떼거리를 본다. 전철역 나들목에 왼쪽 오른쪽 가에 붙어선 여섯 사람. 등에는 길이가 2미터나 되는 몽둥이를 찼네. 그네들 탓에 지하철을 타고 내려가고 올라오는 길은 겨우 두 사람이 비좁게 다닐 수밖에 없다. 서대문역을 지나 충정로역까지 걸어서 가는데 충정로역에는 빨간 모자를 쓴 백골단도 있다. 이네들은 누구를 지키려고 이 자리에 있었을까? 이네들은 누구를 지킬 셈으로 이 늦은 때에도 전철역을 꽁꽁 에워싸든 둘러쌀까? 누구를 지키고자 2미터짜리 몽둥이를 등에 차고 다니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붙일까? 누구를 지키고자, 그걸로 찍으면 살점이 나가는 방패를 들고 다닐까? 그러나 이제는 밤이 늦어 철수하는지 다른 데로 가는지 전경 떼거리가 건널목을 건너 닭장차에 오른다. 건널목을 건널 때에 이네들이 들고 있는 방패에 가로등 불빛이 비치며 번쩍번쩍한다.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노동절’이란다. 2001.5.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