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다 3
생각해 보면, 책집마다 베스트셀러란 이름으로 책에 점수하고 등수를 매기는 짓은 줄세우기이다. 더 팔렸대서 더 훌륭한 책일 수 없으나, 언제나 팔림새 하나를 놓고서 줄을 세운다. 그래서 팔림새가 좋은 책은 더 잘 팔리도록, 아니 우리가 그 팔림새 좋은 책에 더 눈길을 두도록 이끌고, 우리도 그런 줄세우기에 절로 따라간다. 책을 줄세우기 시켜도 될까? 글쓴이나 펴낸곳을 줄세우기 해도 좋을까? 책뿐 아니라 사람도 줄세우기를 하는 마당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일까? 나라에서도 정당지지율이나 경제성장율이라 하면서 툭하면 줄세우기를 한다. 가만 보면 비례대표조차 줄세우기 아닌가? 줄세우기 아닌 새로운 앞길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나아가도록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야지 싶다. 학급에서는 모든 아이가 반장이 되어 학급을 이끌도록 할 노릇이고,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나라지기가 되어 나라살림을 꾸리도록 할 노릇이지 싶다. 투표란, 어쩌면 민주가 아닐 수 있다. 참다운 민주란, 투표 없이 모든 사람이 꼭두지기 노릇을 할 줄 알 뿐 아니라 슬기롭고 사랑스럽게 서로 보살피는 마음을 가꾸고 가르치고 배우고 나누는 살림터에서 피어나지 싶다. 2004.7.6.
재다 4
우체국에 가면 키를 재는 연장이 있는데, 이 연장에 올라서면 몸무게도 잴 수 있고, 비만율인가 체지방율도 숫자로 뜬다. 아이들은 이 키잼틀이 재미있다면서 더러 올라가서 논다. 저희 키랑 몸무게가 얼마나 나오는가 알아보는 놀이를 한다. 두 아이가 서로 키하고 몸무게가 얼마라고 읽으며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생각한다. 어느 아이는 또래보다 크거나 작다. 어느 아이는 또래보다 무겁거나 가볍다. 몸은 다 다르다. 다 다른 몸처럼 마음이 다 다르다. 어느 나이에 키나 몸무게가 어떠해야 할 까닭이 없다. 작으면 작을 뿐, 크면 클 뿐이다. 생김새도 매한가지이다. 예쁜 얼굴이란 뭘까? 잘 빠진 몸매란 뭘까? 우리는 왜 겉모습을 이토록 따지고, 겉모습을 재는 장사판이 이다지도 클까? 우리 삶에서 대수로운 대목이 마음이라 한다면, 막상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마음을 다스리고 돌보고 닦고 북돋우고 키우고 살찌우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학교에서는 직업교육에 매달리고, 도시에서 어떤 일자리를 얻어 돈을 더 잘 벌 만할까를 따지거나 잰다. 마음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가 있을까? 마음을 이야기하는 공공기관이나 회사가 있을까? 마음을 사랑하는 글이나 책은 얼마나 될까? 2019.3.1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