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2

헌책이 부르는 소리를 들어 보자. 헌책은 누구나 똑같이 부른다. 가멸찬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부른다. 누구나 배울 마음이 있으면 기꺼이 부른다. 500원짜리 헌책도 5000원짜리 헌책도 5만 원짜리 헌책도 모두 아름답다. 값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 겉이 아무리 허름하더라도 속에 담은 알맹이가 한결같기에 아름답다. 살짝 눈을 감아 볼까? 눈을 감고서 한손에는 헌책을, 다른 한손에는 새책을 쥐어 보자. 손으로 만져서 어느 쪽이 헌책이고 새책인지 가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둘을 가름해 놓고 나서 무엇이 다른 줄 얼마나 알겠는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나한테, 누가 헌책을 읽어 준들 새책을 읽어 준들 ‘헌책에 흐르는 이야기’가 헐게 들리거나, ‘새책에 흐르는 이야기’가 새롭게 들린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다. 헌책은, 우리더러 책을 읽을 적에 겉이 아닌 속을 읽으라고 속삭인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읽으라고 속살인다. 1993.2.2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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