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1

헌책은 낡은 책이 아니다. 낡은 책이라면 ‘낡은책’이라고 한다. 헌책은 오래된 책이 아니다. 오래된 책이라면 ‘오랜책’이라 한다. 헌책은 옛날 책이 아니다. 옛날 책이라면 ‘옛책’이라 해야겠지. 그러면 헌책은 뭔가? 말 그대로 ‘헌책’이다. 헌책이란, 누가 먼저 손을 댄 책, 어느 한 사람 손길이 먼저 닿은 책이다. 새책이란 뭘까? 새책이란 아직 아무도 손을 안 댄 책이다. 그러니 도서관에 있는 책이라면 모두 헌책이다. 왜 그러겠는가? 새책집에서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사람손을 탔으니 헌책이지. 책으로 삶길을 배우는 사람이 건사하는 서재에 있는 책도 헌책이다. 책으로 삶길을 배우려 하니 모든 책을 차근차근 손으로 펴서 읽었겠지. 모든 읽힌 책은 헌책이다. 아직 안 읽힌 모든 책은 새책이다. 읽히면서 사랑을 받았기에 헌책이다. 앞으로 읽히기를 바라며 기다리기에 새책이다. 1992.9.2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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