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3.7.
《묻다》
문선희 글·사진, 책공장더불어, 2019.3.8.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묻다’라는 낱말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아이들은 끝없이 묻고 또 묻기도 하지만, 이 ‘묻다’란 다른 어느 자리보다 “씨앗을 묻다”로 쓴다. 겉에 자국이 남는다는 ‘묻다’도 있는데, 모든 ‘묻다’는 비슷한 얼거리로 태어나서 차츰 갈래를 뻗은 낱말이라고 느낀다. “씨앗을 묻는다”고 할 적에는 새로 태어나는 길을 들려준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다고 할 적에도 이와 같다. 낡은 몸을 내려놓고서 새롭게 길을 가라는 뜻으로 묻는다. 씨앗한테도 이제 그 몸을 내려놓고서 뿌리를 뻗고 줄기를 올리도록 새롭게 깨어나라는 뜻이다. 《묻다》라는 책은 ‘묻다’를 여러모로 이야기한다. 먼저 이 나라 정치하고 행정이 어마어마한 집짐승을 산 채로 땅에 파묻은 짓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왜 그처럼 묻어야 했는지 묻는다. 그처럼 묻고 나서는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이렇게 묻었으니 다 잊어도 될 만한가 하고 묻는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려는지 묻는다. 묻었기에 묻고, 물으면서 자꾸자꾸 물음거리가 생긴다. 우리는 땅에 무엇을 묻어야 할까? 산 목숨을 왕창 묻는 짓을 또 해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씨앗을 묻으면서 아름드리 살림터로 거듭나는 길을 가야 할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