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난

이름난 이가 쓴 글이란 ‘이름난 이가 쓴 글’이다. 훌륭한 글도 멋진 글도 놀라운 글도 새로운 글도 빛나는 글도 고운 글도, 더구나 좋은 글도 아니다. 글쓴이 이름값이나 펴낸곳 이름값을 쳐다본다면, 글멋이나 글맛을 알 수 없다. 모름지기 어느 글을 읽든 글쓴이 이름이나 펴낸곳 이름은 덮을 노릇이다. 오로지 글만 쳐다보고서 이 글에 흐르는 기운이나 뜻이나 마음이나 눈빛을 읽어야지 싶다. 글이란, 한글이나 알파벳이라고 하는 껍데기가 아닌, 한글이나 알파벳이라고 하는 무늬에 담은 기운이나 뜻이나 마음이나 눈빛이다. 우리는 줄거리를 알려고 읽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알려고, 기운을 나누려고, 뜻을 키우려고, 눈빛을 밝히려고 읽는다. 속내 아닌 껍데기를 훑기에 이름값에 속아넘어가기 일쑤이다. 이름값에는 아무런 마음이 안 흐른다. 1994.4.3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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