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몸에 난 사마귀를 없애는 길이 한 가지 있다. 사마귀를 안 쳐다보면서 잊기. 손톱으로 뜯든 칼로 도려내든 마구마구 파내려 하든, 사마귀를 사라질 낌새가 없기 마련이다. 사마귀를 자꾸 쳐다보면서 마음을 쓰노라면, 사마귀를 손으로 파내려 하면, 사마귀는 악착같이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퍼지려 한다. 이런 사마귀를 만지지도 건드리지도 쳐다보지도 알은체도 안 하면서 까맣게 잊으면 감쪽같이 며칠 만에 사라진다. 여덟 해 앞서 어느 날, 내 오른손등에 처음 사마귀 하나가 돋았는데, 이 아이를 파내니 셋이 늘었고, 세 아이를 파내니 아홉으로 늘었고, 여덟 해 동안 오른손등뿐 아니라 왼손등으로, 또 오른발등으로까지 번지더라. 그런데 이 사마귀를 이레 앞서 눈 질끈 감고서 안 만지고 안 쳐다보고 까맣게 잊기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이레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깜짝 놀랐다. 사마귀는 우리 눈길을 먹고 자랐구나. 우리는 어디에 눈길을 두면서 우리 기운을 쏟는 하루일까? 우리는 무엇에 우리 기운을 바치는 살림일까? 2008.8.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