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1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강의하는 교수가 있는데, 다들 숨죽인 채 끽소리도 안 한다. 학점이 깎일까 봐 눈치를 본다. 왜 눈치를 볼까? 교수이든 아니든 그이가 잘못한 일은 잘못이라고 똑똑히 밝혀야 하지 않나? 지난 한 해 동안 나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면서 참았지만, 이런 대학교는 더 다닐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엉터리 수업을 그만하라고 책상을 꽝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교수가 저지른 일을 낱낱이 그이 얼굴을 쳐다보면서 똑똑히 말했다. 이러고서 앞으로 나가 교수한테 “잘 계세요. 저는 갑니다.” 하고 말한 뒤 앞문을 쾅 소리 나도록 닫고 나갔다. 등짐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꺼낸다. 골마루 창가에 앉아 바람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예전 어린이 투박한 글을 읽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난 이제껏 동시를, 시를 읽은 적이 없구나. 1995.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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