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30. 기다려



  글 하나를 마무리짓기 앞서 큰아이가 불쑥 부른다. 다섯 줄로 한 자락을 마치면 될 글이다. 아이가 부른대서 마음이 살짝이라도 흐트러질 일은 없으나, 뭔가 아이한테 알려줄 일이 생겼다고 뼛속 깊이 짜르르 번쩍거린다. 글마무리를 멈추고 아이를 두 손으로 품에 안고서 속삭인다. “사름벼리야, 어머니가 뜨개할 적에 너희가 안 건드리지?” “응.” “너희가 책짓기 하거나 그림 그리거나 뭔가 쓸 적에 아버지가 안 건드리지?” “응.” “아까 아버지가 한창 밥할 적에 동생이 이것 좀 보라고 불렀지만 아버지는 밥을 지켜봐야 하니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릴 수 없잖아?” “응. 그래.” “아버지는 곧 마무리를 지어야 할 글이 있어. 조금 더 쓰면 끝나거든. 그런데 마무리를 지을 적에 누가 말을 걸면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어. 그때에는 기다려 주렴. 얼른 끝내고 다시 이야기하자.” 큰아이하고 함께 살아온 열두 해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바랄 적에 ‘기다려’ 하고 말한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없다시피 하다. 다만 이제는 아이도 뭔가 기다리고서 제 할 말을 하면 좋겠구나 하고 느낄 때이지 싶다. 기다리는 사람이란 너그러운 사람이란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란 엄청나게 넉넉한 사람이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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