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걸은 길



어제 걸은 길은 그저 어제일 뿐입니다. 어제 그 길을 걸었다고 해서 오늘도 꼭 그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적에는 오늘 걷는 길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어제 아름다웠거나 못났기에 만나거나 사귀지 않아요. 오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기에 만나거나 사귀어요.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모레로 나아갑니다. 어제를 살다가 오늘을 살면서 모레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 삶길은 뚝 끊어져 죽음이 됩니다. 그렇잖아요. 오늘 잠들고서 못 일어나면 죽음입니다. 오늘 아침까지 엄청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었다 하더라도, 잠든 뒤에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죽음이요 끝이니 더는 만나거나 사귈 수 없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는 저마다 모레를 보면서 만나거나 사귀는 셈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아닌 모레를 보고 말이지요. 누구는 모레에도 돈이 많으리라 여겨, 누구는 모레에도 이쁜 모습이리라 여겨, 누구는 모레에도 힘이 세리라 여겨 만나거나 사귑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보며 사람을 사귀려나 하고 돌아봅니다. 저로서는 이야기가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스로 지으며 새롭게 배우는 살림을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려 합니다. 남이 쓴 이야기를 놓고서 떡방아를 찧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살림꽃을 피우려고 손수 짓는 살림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펴거나 들을 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려고 해요. 남 이야기는 할 까닭이 없어요. 내 이야기를 하고 네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이 걷는 길을 이러쿵저러쿵 따질 까닭이 없어요. 내가 걷는 길을 되새기고 네가 걷는 길을 바라보면 되어요. 어제까지 몇 권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오늘부터 어떤 숨결로 어떤 눈빛을 어떤 마음으로 밝힐 책을 가슴에 담으려 하느냐를 마주하면 되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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