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24. 움찔



  삶을 읽는 눈을 배우기 앞서 곧잘 움찔 놀랐으나, 삶을 읽는 눈을 스스로 배운 뒤부터는 움찔 놀랄 일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요즈막에 옴찔 놀란 일이 있어요. 저녁나절에 혼자 조용히 불꽃숨을 가다듬으면서 쉬는데, 누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랑 자국을 느꼈어요. 제가 방문을 닫고서 불꽃숨을 쉴 적에는 아이들도 곁님도 안 들어오는데, 무슨 일로 문을 열고 들어오나 싶었지요. 눈을 가리고서 불꽃숨을 쉬는 터라 눈가리개를 벗고서 살짝 볼까 싶기도 했지만, 저는 제가 하던 대로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그런데 낯선 누가 제 앞으로 옆으로 뒤로 돌면서 뭔가 하더군요. 식은땀이 난다고 하는 말을 살며 느낀 일이 없다시피 한데, 아마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왜 식은땀을 흘린다’고 하는가랑 ‘왜 등골이 오싹하다’고 하는가를 뼛속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눈가리개를 벗지 않았어요. 눈가리개를 했어도 다 보이니까요. “그대가 바람이면 바람으로 말을 하라. 아니면 나를 건드리지 마라.” 하고 마음으로 속삭이는데, 제가 앉은 자리에서 눈가리개를 한 채로 볼 적에 무릎 밑으로만 보이던 우람한 누가 제 몸을 매우 따스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춤을 추더니 실오라기 무더기가 돌개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겪고서 ‘움찔’이라는 낱말을, 그리고 ‘움트다’라는 낱말을 맞대면서 새롭게 바라보았어요. ‘움’하고 ‘싹’은 아주 비슷한 낱말이에요. 예부터 ‘움트다·싹트다’를 말한 까닭을 알 만했고, 새로 돋는 잎이며 꽃이 옴찔옴찔 터지는 뜻도 알 만했습니다. ㅅㄴㄹ



움찔


움찔하는 작은 결

살짝 나타나는가 싶더니

봉오리 천천히 벌어지는

새봄 새아침 꽃


움찔하는 잔 몸짓

문득 보이는가 싶더니

부르르 보로로 떠는

놀란 얼굴 망설이는 눈


햇살이 콕콕 건드리니

움찔움찔 움트려는 잎

바람이 톡톡 치니

옴찔옴찔 깨어나려는 나비


놀랐지?

아찔아찔 휘둥그레

걱정 말아!

으쓱으쓱 어깨 펴렴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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