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22. 길


  아침 아홉 시 삼십 분부터 책다발을 싸서 16시 50분에 마치고 밥을 먹습니다. 저는 일을 할 적에 아예 안 쉬기 일쑤입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기에 담배짬조차 내지 않아요. 물 한 모금을 마시거나 기지개를 켜고는 ‘다 쉬었다’고 여기지요. 여섯 시간 이십 분에 걸쳐 책다발을 싸다가 아주 살짝 틈을 내어 ‘길’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며 글을 씁니다. ‘삼천리’라고 하는 출판사에 드리려고 썼어요. 저녁을 먹고서 셈틀집에라도 다녀올까 생각하는데, 책짐이 더 있다는군요. 열다섯 다발을 마저 더 쌉니다. 이튿날 새벽에 책다발하고 책꽂이를 길가에 내려서 짐차에 실으면 몇 덩이인지 셀 텐데, 얼추 아흔두 덩이 즈음이지 싶어요. 아마 2400권 남짓 쌌구나 싶습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기면서 눈을 비빕니다. 이제 졸음이 쏟아지려 하는군요. 시원한 마실거리나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몸을 달랜 뒤에 꿈나라로, 꿈길로, 별을 품는 길로 날아가야겠어요. 짐차를 타고 곁님이랑 아이들이 있는 우리 보금자리로 먼길을 신나게 달려야겠습니다. 길이란, 언제나 삶이에요. 삶이란, 늘 길이에요. 길이란, 하루하루 새롭게 맞이하면서 누리는 사랑이에요. 사랑이란 참말로 새롭게 맞이하고 싶은 하루가 흐르는 길일 테지요. ㅅㄴㄹ


오솔길을 걸으면
토끼 멧돼지 되지
골짝길을 걸으면
다람이 곰 되고

 

하늘길을 날면
쏙독새 후투티 되더니
바닷길을 헤엄치면
고래 오징어 되더라

 

눈길을 헤치면
늑대 여우 되다가
숲길을 누비면
어느새 바람이 되어

 

꿈길을 걷는 밤
노래길을 가는 아침
별길을 그리는 마음길
말길을 짓는 손길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