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15. 사람



  저는 어릴 적부터 “어떤 사람”으로 크거나 살아가려나 하고 헤아렸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거칠 적에는 학교에서 언제나 “어떤 돈벌이 자리”를 얻으면 좋겠느냐를 가르치고 찾으라고 다그쳤지요. 학교 바깥에서도 “어떤 사람”이 아닌 “돈을 얼마나 버는 어떤 일자리”에 있어야 하느냐만 따졌어요. 그렇지만 제 마음은 ‘돈이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번다’는 생각이었고 ‘일이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모두 일자리’로 여겼습니다. 남을 따라갈 뜻이란 없었어요. 오로지 나를 보고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내어 내 길을 내 손으로 짓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린이로 살 적에는 ‘어른’을 꿈꾸었고, 어른 나이가 된 뒤에는 ‘어버이’를 꿈꾸었는데, 이제 어른 나이로 어버이 자리에서 사는 동안 ‘사람’을 새롭게 꿈꿉니다. 몸뚱이라는 겉모습을 넘어서, 마음을 다스리는 넋이라는 속알맹이로 사람이 되는 길을 헤아려요. 밥을 먹는 사람도, 말을 하는 사람도, 두 손을 쓰는 사람도, 두 발로 걷는 사람도 아닌, 슬기로운 사람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즐거운 사람이나 고운 사람이나 빛나는 사람이 되는 길을 헤아립니다. 나부터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려는 꿈으로 하루를 맞이할 적에, 내 곁에 있는 숨결도 저마다 다르면서 싱그럽게 슬기롭고 사랑스럽고 즐겁고 곱고 빛나는 사람으로 활짝 웃을 테지요. 눈을 감으면서 비로소 만나는 사람입니다. 마음눈으로 사귀는 사람입니다. 온넋으로 안고 손잡는 사람입니다. ㅅㄴㄹ



사람


내가 되려는 사람은

하늘빛 그리는 사람

흙내음 맡고서 배부른 사람

풀잎 뜯어 피리 부는 사람


나무줄기 타고 노는 사람

냇물에 멱감으며 빨래하는 사람

감자를 삶아 나누는 사람

자장노래 부드러이 들려주는 사람


옛이야기 사근사근 읊는 사람

숲을 얼싸안는 사람

아기 업고 해바라기하는 사람

잠자리하고 수다 떠는 사람


꽃송이랑 웃으며 속삭이는 사람

날듯이 춤추며 걷는 사람

이웃별로 마실 다니는 사람

그리고 상냥한 사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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