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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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8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책과함께

 2013.6.25.



그 ‘길’이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이미 가라앉은 마음속에 있지 않은가? (39쪽)


스님으로서 받아야 할 존경을 받기가 하도 싫어서 그랬단다. 비천한 일을 찾아 도맡아 하고, 비천한 옷을 입고, 비천한 음식을 먹고, 막노동꾼으로 살고……. 그는 ‘권위’를 갖게 될 것 같아 늘 도망 다녔다. (63쪽)


그의 장기는 시 외에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었다. (79쪽)


손을 무릎에 얹어놓고 가만히 있으면서 계속 올라갈 수도 있다. 거리를 두지 않고, 그러고는 가지도 않고 계속 머물지도 않는 그 뭔가를 마음에 늘 간직하면 된다. 빛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그 그림자다. (136쪽)


한국에서 제2의 카프카가 태어난다 해도 ‘명문대’ 간판이 없는 한 그의 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궁극의 지점, 즉 죽음의 문턱에 가면 이 모든 간판이 다 우습게 보이지 않겠는가? (167쪽)



  한국말에 ‘중·스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불교라는 길을 가는 사람을 수수하게 가리킬 적에는 ‘중’이요, 중이라는 삶길을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가는구나 싶으면 ‘스님’이라 해요. ‘스님’은 때로는 달리 쓰기도 합니다.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중뿐 아니라, 우리한테 삶길을 새롭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밝혀 주는 스승이 될 만한 분한테도 이 이름 스님을 씁니다.


  한국말 ‘중·스님’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만, 다른 길을 새롭게 가면서 깊이 배우고 넓게 깨달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이러한 낱말에 담았지 싶어요. 불교라는 틀을 넘어 목사나 신부 같은 믿음길을 걷는 사람도 어느 모로 보면 ‘중·스님’일 수 있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불교나 천주교나 개신교 같은 이름을 따지기보다는, 믿음길을 가니 다들 ‘중’이요, 믿음길이 깊거나 넓으니 모두 ‘스님’으로 여겨 버릇합니다. 아마 어려운 말이나 경전은 알 수 없지만, 됨됨이와 매무새와 몸짓과 말씨를 살펴서 서로 마주하려 했지 싶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박노자·에를링 키텔센, 책과함께, 2013)라는 책은 믿음길을 배움길로 삼아서 삶길로 다스리려 한 옛어른 가운데 불교라는 자리에서 슬기로운 말씀과 몸짓을 남긴 분들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어느 스님(또는 스승)은 말과 책을 남기고, 어느 스님(또는 스승)은 아이들하고 놀거나 흙일이나 막일을 하는 몸짓을 남겼다고 해요. 삶을 배우려고 삶길을 걷다가 깨달아 말이나 몸짓을 남깁니다. 삶길에 배운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수한 살림살이에 녹여내어 여느 수수한 이웃한테 부드럽고 쉽게 들려줍니다.


  깨달으려는 길이란 스스로 배우려는 길이면서, 스스로 기쁘게 배워서 이웃하고 널리 나누려는 길이겠지요. 그러니 깨달은 스님(또는 스승)은 아이들하고 해맑게 뛰놀 줄 아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놀 줄 아는 마음,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도록 이끌 줄 아는 몸짓, 스스로 아이로 살아가는 어른인 하루, 이러한 나날을 오늘 우리도 즐겁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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