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르는 척 - 개정판 ㅣ 시작시인선 82
길상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노래책시렁 32
《모르는 척》
길상호
천년의시작
2007.1.30.
하루를 그릴 수 있는 마음이라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몸짓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루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면, 하루를 노래하는 걸음걸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 한 줄은 어떻게 쓸 적에 즐거울까요? 글멋을 부리거나 글치레를 할 적에 즐거울까요? 오늘 하루를 새롭게 그리려는 마음으로 찬찬히 이야기를 써 내려갈 적에 즐거울까요? 《모르는 척》을 읽습니다. 시 한 줄이 그냥 태어나는 일이란 없고, 시 한 줄을 그냥 쓰지 않으리라 봅니다. 아무렇게나 흐르는 삶이란 없으며, 아무 뜻이 없는 살림이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새롭게 마주할까요? 스스로 새롭고자 하는 몸짓으로 살면서 글을 쓸까요?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 줄 만큼 살피면서 몸을 꾸미고 옷을 입고 말씨를 가다듬으면서 글을 쓸까요? 새나 풀벌레는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구름이나 바람은 사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해나 별은 사람 눈치를 안 살핍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졸립다고 하더라도 제 배가 고프면 으앙 울면서 어머니를 부릅니다. 우리가 쓰거나 읽는 시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어쩌면 사랑스레 내딛을 걸음걸이는 모르는 척하면서 글멋을 키우기만 하는 시만 넘치지 않을까요? ㅅㄴㄹ
바람이 나를 노래하네 / 속을 다 비우고서도 / 땅에 발 대고 있던 날들 / 얻을 수 없던 / 그 소리, / 난간에 목을 매고서야 / 내 몸에서 울리네 (風磬소리/27쪽)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