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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 - 성원근 유고시집 ㅣ 창비시선 146
성원근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평점 :
품절
노래책시렁 30
《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
성원근
창작과비평사
1996.2.28.
아침에 뒤꼍으로 가는데 들고양이 한 마리가 돌담에 앉아서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이 들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태어났고, 우리 집에서 곧잘 먹이를 얻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될 즈음 큰고양이한테 물리고 뜯겨 무척 앓았고, 한동안 이 아이를 어루만지며 보살펴 주었는데, 사람손을 탔어도 들고양이로 살고, 들고양이로 살면서도 우리 곁에서 알맞게 떨어져 지냅니다. 어제는 이 아이하고 10센티미터쯤 떨어진 데에 밥그릇을 놓고 밥먹는 모습을 바라봤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 아이가 저를 빤히 바라볼는지 모르지요. 《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을 읽으며 눈속 같은 누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떠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하늘이 맑을 적에 노래가 생겼듯이, 마음이 맑을 적에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봉우리에 올라 하늘을 본다면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듯이, 손수 짓는 사랑으로 살림을 돌볼 적에 우리 보금자리에 맑은 바람이 노상 싱싱하게 흘러요. 누구나 맑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는 손길로 글줄을 여밉니다. 노래를 부르듯 살림을 짓고, 살림을 짓는 손으로 글발을 엮습니다. 시를 쓰지 말고 살림을 쓰면 됩니다. 시를 지으려 하지 말고 사랑을 지으면 됩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태어나는 시 한 줄입니다. ㅅㄴㄹ
그날, / 하늘이 맑을 때, / 노래가 생겼다. / 그날 감람산에 오르면 / 하늘을 볼 것이다. (하늘/6쪽)
내가 가진 모든 것과 / 네가 가진 모든 것으로써 / 우리 만나지 못한다면 / 우리가 못 가진 그것으로 만나기로 할까. (여백/77쪽)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