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라는 씨앗
한글날을 한 해에 고작 하루로 여길 수 있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이렇게 여기는데, 이뿐 아니라 지난 한 해 동안 말이며 글을 함부로 쓰거나 거의 팽개친 채 살았네 하고 뉘우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한글날이 하루뿐이니 그만 쉽게 잊을 수 있을 텐데, 이때에는 이 실타래를 푸는 길이 있습니다. 먼저,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늘 한글날로 여기면 됩니다. 한글날뿐 아니라 한말날이라고, 글하고 말을 함께 기리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고 가꾸는 아침저녁을 누리면 되어요. 다음으로, 한글날이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바로 이 날 기쁜 말이랑 글을 씨앗으로 심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듯이, 밭에 씨앗 한 톨을 심어 열매를 얻으려 하듯이, 우리는 사랑스럽거나 즐겁거나 곱거나 알차거나 살뜰하거나 뜻깊거나 거룩하거나 훌륭하거나 좋거나 상냥하거나 참하거나 참되거나 멋스럽거나 맵시나거나 아기자기하거나 신바람나거나 새로운 꿈을 ‘말씨앗’ 한 톨에 담아서 심을 만해요. 그리고 한글날을 비롯해서 좋은 사전이나 우리말 이야기책을 한 권씩 장만하거나 틈틈이 장만해서 읽어 볼 만하겠지요. ‘숲노래’ 같은 사전짓는 두레에서 엮거나 쓴 책도 좋고, 어느 책이든 좋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는 날로 기려 봐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