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64
멋터
나들이를 다니면서 몇몇 ‘스팟(spot)’을 찍자면 바쁘기만 하면서 외려 재미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팟’이 무엇을 가리키는 영어일까 하고 한참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멋진 자리”이지 싶습니다.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 멀리 나들이를 다니는 일을 놓고 ‘나들이·마실’ 같은 낱말을 써 볼 수 있지만, 한자말로 ‘여행’을 쓰는 분이 퍽 많아요. 일본마실이나 미국마실처럼 써 볼 만하지만 일본여행이나 미국여행이라고 해야, 뭔가 이웃나라를 다녀왔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배우러 다른 고장이나 나라를 다녀오는 길을 배움마실이라 할 만합니다. 굳이 유학이라 하지 않아도 되어요. 누구나 어디에서나 배운다는 삶을 헤아리면 배움길 같은 낱말도 배움마실하고 나란히 쓸 수 있어요.
그나저나 마실을 다니면서 멋진 자리를 콕콕 찍기보다는 어느 마을에 오래 머물면서 차분히 돌아볼 적에 한결 느긋하고 즐겁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멋진 자리를 가리키는 이름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맛있는 집을 두고 ‘맛집’이라 한다면, 맛집이 모인 곳은 ‘맛마을’이나 ‘맛고을’이나 ‘맛터’라 할 만해요. 멋있는 곳을 찾아가려는 길이라면 ‘멋터’나 ‘멋자리’를 누리고 싶다 할 수 있어요.
길이 멋지면 ‘멋길’입니다. 골목이 멋지면 ‘멋골목’입니다. 멋집, 멋마을, 멋숲, 멋바다, 멋들, 멋나라, 멋밤, 멋하늘, 멋구름, 멋햇살 …… 멋있구나 싶은 여러 가지를 마주하면서 수수하게 ‘멋-’을 앞에 붙입니다. 때로는 ‘-멋’을 뒤에 붙이면서 마실멋, 배움멋, 말멋, 옷멋, 길멋, 책멋, 그림멋, 글멋, 골목멋, 나라멋, 집멋 …… 갖은 멋을 누리거나 나눌 만해요.
서로 멋을 찾으면서 멋동무가 되겠지요. 맛있는 밥을 함께 찾아나서는 동무라면 맛동무가 될 테고요. 멋벗이나 맛벗이라 할 수 있고, 멋님이나 맛님 같은 말도 재미있습니다.
멋지게 걸어 볼까요? 멋걸음입니다. 멋지게 지어 볼까요? 멋손입니다. 멋을 알아보는 눈이 좋군요. 멋눈이네요. 귀여겨들을 줄 알아 멋귀요, 서로서로 마음을 넉넉히 읽고 보듬기에 멋넋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