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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평점 :
노래책시렁 20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문학과지성사
1992.5.8.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습니다. 아이를 불러 손발톱을 깎아 줍니다. 때로는 아이가 스스로 손발톱을 깎기도 하지만 아직 매끄럽지 않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몇 살이던 무렵까지 손발톱을 깎아 주거나 귀를 파 주었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열 살 가까이까지 해 주셨지 싶고, 어느 때부터인가 스스로 해내며 살았다고 느낍니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어른이라는 몸을 입고 매우 마땅하다 싶도록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어차피 혼자 가는 삶길이라기보다는, 차근차근 홀로서기를 익히면서 새롭게 발을 뻗는 살림길이지 싶습니다. 《혼자 가는 먼 집》에 흐르는 쓸쓸한 술내음이 짙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나 여기는 눈길은 1992년 아닌 2018년 눈길이겠지요. 1992년을 어른이란 몸으로 살자면, 민주가 아직 이름뿐이던 그무렵 이 땅에서 빛줄기를 보기 어렵던 발걸음이라면, 맨마음으로 버티기 힘들었으리라 느낍니다. 그렇다면 1992년 그무렵에 어린이로 살던 몸이라면? 아직 주먹질이나 막말을 아이한테 잔뜩 퍼붓던 그무렵에 나고 자란 아이들은 오늘날 어떤 어른으로 삶을 지을까요? 홀로서는 모든 이들 가슴에 촛불 한 자루 곁에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 초라한 남녀는 /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불우한 악기/12쪽)
혼자 대낮 공원에 간다 / 술병을 감추고 마시며 기어코 말하려고 / 말하기 위해 가려고, 그냥 가는 바람아, 내가 가엾니? (흰 꿈 한 꿈/18쪽)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