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꾸밀까



글을 꾸며서 쓰는 사람을 보면 아리송하다. 그렇지만 아리송하다고만 여길 뿐 도무지 왜 꾸며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다가 엊그제 문득 깨닫는다. 이야기가 스스로 흘러넘치는 사람은 글을 안 꾸민다. 아니, 꾸밀 생각을 처음부터 안 한다. 스스로 가슴에 품고 보듬어도 끝없이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기느라 바쁘니, 이를 꾸밀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그대로 옮기면서 삶을 글로 담는 보람을 누린다. 다시 말해서 글을 꾸며서 쓰는 사람은, 이야기가 흘러넘치지 않는 셈이다. 이야기가 없는데 쥐어짠다든지, 이야기가 메말랐는데 어떻게든 써내려고 하다 보니 꾸미지 싶다. 쓸 글이 없다면 안 쓸 적에 가장 낫다. 이야기가 흘러넘치도록 하루하루 삶을 지어 어느 때에 연필을 붙잡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 비로소 삶을 글로 옮기면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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