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자루



  어젯밤 열두 시에 일어난 큰아이가 연필을 깎아 달라 한다. 낮 다섯 시 즈음 밥을 먹고서 곯아떨어진 아이는 한참 자고 나서 한밤에 연필을 깎아서 하루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연필 한 자루쯤 깎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몇 시간 뒤로 미루기로 한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서 새마음으로 연필도 깎고 하루 이야기를 그려 보자고 이른다. 몇 시간 뒤에 맞이한 새벽에 연필 두 자루를 깎는다. 큰아이 연필만 깎을 수 없어 작은아이 연필도 깎는다. 일본 오사카는 한국 고흥하고 대면 1도나 2도쯤 높단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지만, 우리 집은 마당에 나무가 우거진 시골이라 온도가 높아도 그리 안 덥다. 며칠째 머무는 일본 오사카는 도시요 둘레가 온통 찻길이니 온도가 높으면 더 덥다. 큰아이 연필을 깎을 적에는 콧등에 땀이 송알송알 맺더니, 작은아이 연필을 깎을 적에는 등줄기를 타고 땀이 주르르 흐른다. 작은아이를 불러서 “아버지 등 쪽에서 부채질을 해 줄 수 있니?” 하고 물어본다. 작은아이는 부채질을, 나는 깎이질을 한다. 칼로 연필을 깎을 적에는 손길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새삼스레 되새긴다. 이 손길을 스스로 누리면서 연필을 쥐고, 이 손끝을 놀리면서 새롭게 글 한 줄을 적어 내리겠지. 아이들 손에서, 내 손에서 새글이 함께 태어난다. 2018.7.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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