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맨발로 풀밭을 디디며 나무 밑에 서면 발끝부터 손끝까지 찌릿찌릿 새 기운이 오른다. 이를 무척 어릴 적부터 느꼈다. 나무란 참 놀랍고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러나 왜 맨발로 나무 밑에 설 적에 온몸에 찌릿찌릿 기운이 오르는지 몰랐고, 둘레에 이런 말을 하면 두 갈래로 대꾸를 했다. 하나는 참말 그렇더라 하는 대꾸, 다른 하나는 미친 소리 같다는 대꾸. 어떤 사람은 물맛이 다른 줄 재빠르게 느낀다. 어떤 사람은 술맛이 다른 줄 남달리 느낀다. 어떤 사람은 밥맛이나 손맛을 깊이 느끼고, 어떤 사람은 말맛이나 글맛을 낱낱이 가르면서 느낀다. 어쩌면 먼 옛날에는 누구나 맨발로 흙을 밟고 살았을 테니, 맨발로 풀밭에서 찌릿찌릿 받아들이는 기운을 새삼스레 여기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려니 살았겠지. 오늘날 우리는 두툼한 신에 버선에 아스팔트에 시멘트에 갖가지 화학섬유에 둘러싸이면서 발바닥이나 손바닥이 무디어졌지 싶다. 흙을 못 느끼는 발로 글을 쓴달까. 풀을 못 느끼거나 나무를 못 느끼는 몸으로 글을 쓴달까. 나는 흙글을, 풀글을, 나무글을, 이리하여 숲글을 쓰고 싶다. 2018.7.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