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 책



  온누리에 있는 책은 언제나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처럼 두 가지 책으로 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못 알아볼 사람한테 읽힌들 부질없는 책이요, 다른 하나는, 못 알아볼 사람한테 읽혀도 씨앗을 살며시 심는 책입니다. 못 알아볼 사람한테 책을 건네거나 선물하거나 빌려주더라도 참말로 부질없을 수 있어요. 하나도 모르는 책일 수 있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는 책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도 모르거나 조금도 알려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알 수 있거나 알아보려고 나서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 두 가지 책으로 가를 만하지 싶습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기에 우리는 저마다 잘 할 줄 아는 일도 다르고, 잘 모르는 일도 다릅니다. 온누리에 태어나는 책은 그 책을 쓴 사람 나름대로 깊고 넓게 살핀 책이기 마련이라서, 이 책을 놓고 어느 책이웃도 글쓴이만큼 알거나 살피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말이지요, 글쓴이만큼 책을 읽어낼 수 없으니 책이웃은 책을 읽지 말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글쓴이가 뿌린 씨앗을 살펴서 우리 마음에 즐겁게 심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로 배우는 길에 글쓴이 책 하나를 기쁘게 곁에 두면서 함께 누려요. 우리 배움길에 이웃 글쓴이 책은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저는 책을 내놓거나 글을 써내면서 늘 한 가지를 살펴요. 제 책이나 글은 언제나 씨앗이 된다고 말이지요. 어느 글이웃한테는 오늘 바로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는 씨앗이 되고, 어느 책이웃한테는 한두 해나 열 해쯤 뒤에 비로소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는 씨앗이 되리라 여깁니다. 오늘 제 책을 사서 읽으시더라도 열 해 뒤에 싹이 틀 수 있고, 열 해쯤 뒤에 제 책을 사서 읽으시는 그날 바로 싹이 틀 수 있습니다. 모든 책은 씨앗입니다. 2018.7.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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