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읽는 책이잖아
엊그제 광주일보 기자가 전화로 취재를 한 뒤에 사진 한 장 보내 달라 해서 사진을 보내 줍니다. 광주일보 기자는 제 사진을 받고서 “아내 사진 말고 본인 사진을 보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사진에 계신 분 여자 아닌가요?” 하고 묻기에 속으로 웃습니다. 턱나룻이나 코나룻이 길에 늘어진 여자도 있을 테지만, 제 사진을 보고 저를 여자로 읽은 분은 처음입니다. 어제는 서울에서 한겨레 기자가 고흥으로 찾아와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둘러싼 이야기를 길게 취재했습니다. 즐겁게 취재를 맞아들여서 낱낱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러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마이뉴스에 기사 하나가 머릿글로 올랐습니다.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이라 강의 취소랍니다”라는 이름이 붙은 기사인데, 이 글에 댓글이 제법 붙었기에 죽 훑는데, 어느 분이 “왜 보통 사람처럼 안 입느냐?”고 묻더군요. 빙그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니, 우리는 왜 ‘보통 사람처럼 옷을 입어야’ 할까요? ‘보통 사람’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 기사에 더 깊은 이야기까지 안 적었습니다. 굳이 적을 까닭이 없기 때문인데요, ‘보통 사람처럼 옷을 안 입는 까닭’을 헤아리지 못하는 머리나 마음이라면, 그야말로 아무 생각을 안 하는 모습이로구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몸에 안 받아서 달걀이나 밀가루나 우유를 안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몸에는 김치나 냉면이 안 받기에 이런 먹을거리를 안 먹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몸에 안 받아서 안 먹을 적에 ‘너는 한국사람이면서 왜 김치를 안 먹니?’ 하고 따져야 옳을까요? 사람마다 몸이 달라 그런 먹을거리가 안 받을 수 있는데 말이지요. 저는 화학섬유가 살갗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납니다. ‘보통 사람이 흔히 입는 양복이나 여느(?) 옷’은 제 몸에 안 맞아서 안 입습니다. 그리고 제 살갗은 햇볕이나 바람을 쏘여 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졌을 무렵 국민학교 5학년이었는데요, 저는 1986년에 동무들하고 으레 비를 맞고 놀았고 유제품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온몸 가득 피부병을 앓았습니다. 1986년에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 한국에 방사능비가 내렸으나 어른들은 이를 우리한테 제대로 안 밝혔습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지고 나서 독일을 비롯한 북서유럽 나라는 방사능 피해로 모든 목장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북서유럽 나라는 젖소를 죽여서 파묻지 않았어요. 소젖을 날마다 짰고, 이 소젖을 가루젖(분유)으로 만들었으며, 이 가루젖을 파묻을 곳이 없어서 ‘한국에 돈을 주고 몽땅 주었’습니다. 한국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방사능 분유를 거저로 잔뜩 받을 뿐 아니라, 돈까지 챙겼으며, 이때에 한국 유제품 회사는 어마어마하게 유제품을 싼값에 팔았고, 이런 유제품을 1986년에 어린이로 살던 사람은 누구나 잔뜩 먹었으며, 이 탓에 바로 피부병이 생긴다든지, 아토피가 생긴다든지, 그때에 어린이였다가 뒷날 어른이 된 이들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한테도 아토피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그런 삶이 되었습니다. 제 몸은 이와 같아서, 저는 오늘 2018년에도 이 독소를 빼려고 옷을 가볍게 입습니다. 그리고 독소를 빼낼 뿐 아니라, 제 몸을 제대로 지키려고 3월부터 11월까지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살며 바람하고 햇볕을 살갗으로 먹으려 하지요. 다시 말해서 ‘강의터 예의 지키기’를 따질 수 없고,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예의를 따지다가 사람이 죽을 판’이니까요. 그리고 참다운 예의라면, 서로 마음으로 아끼는 사이일 적에 예의입니다. 이 옷을 입어야 예의일 수 없습니다. 눈을 감고 서로 볼 노릇입니다. 마음으로 서로 헤아리고 사랑할 때에 비로소 예의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돌려서 말할 수 있습니다. “자네는 왜 베스트셀러를 안 읽나?” 하고 물을 수 있어요. 저는 즐겁게 대꾸합니다. “저는 책다운 책을 가려서 읽습니다. 책다운 책 가운데 베스트셀러가 있으면 기쁘게 장만해서 읽습니다만, ‘베스트셀러라는 옷을 입은 책’을 구태여 챙겨 읽지는 않습니다. 제가 읽을 책은 오로지 책다운 책이요 참다운 책일 뿐입니다.” 2018.7.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1242&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