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없지만



  저는 이제까지 살며 어느 하루도 ‘스승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에요. 참말로 ‘스승이 없다’고 느낄 뿐 아니라, 온몸으로 알고 배우는 나날입니다. 다만 ‘스승이 없으니 스스로 배우는 길’인 줄 알 수 있어요. 누가 저를 가르치거나 이끌 수 없습니다. 언제나 저 스스로 배우려 나설 수만 있습니다. 훌륭한 분은 이웃이나 둘레에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훌륭하대서 제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한테서 무엇이 훌륭한가를 읽어내려고 해야, 훌륭한 길을 ‘느끼는 배움’ 하나를 얻습니다. 이다음으로는, 훌륭한 길을 가는 분 곁에서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엿보는·구경하는 배움’ 둘을 얻어요. 그리고 훌륭한 분한테 말을 여쭈어 제 귀로 하나하나 들으며 ‘듣는 배움’을 얻지요. 훌륭한 분이 제 손을 잡고 따라하도록 시키면서 ‘하는 배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참배움이 되는데요, 이제껏 배운 길을 몽땅 내려놓고서 제 보금자리에 제 몸을 써서 제 마음을 기울이는 제 살림짓기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해 보는 동안 비로소 참답게 배우지요. 이제 막바지인데, 스스로 참답게 배운 뒤에는, 저한테 가장 가까운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이 이야기를 살며시 풀어놓습니다.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제가 배운 삶길’을 이야기로 조곤조곤 도란도란 오순도순 상냥하게 들려주거나 물려준다면, 제 배움길은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온누리에 어떠한 스승도 있을 수 없지만, 슬기롭고도 훌륭하게 삶길을 지은 이웃님이 있어서, 말로도 글로도 책으로도 이야기로도 몸으로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읽으면서 스스로 배우는 살림길입니다. 2018.7.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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