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



  우리는 곧잘 ‘어려운 책’하고 ‘쉬운 책’을 이야기합니다. 두 가지 책은 어느 대목에서 갈릴까요? 어렵구나 싶은 말을 골라서 쓰기에 어려운 책이 될까요? 쉽구나 싶은 말을 골라서 쓰기에 쉬운 책이 될까요? 그러나 쉬운 말만 골라서 쓴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이라 해서 ‘쉬운 책’이 되지 않습니다. 여느 삶자리에서 누구도 안 쓰는 딱딱하거나 메마른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가 가득하도록 쓴 책이라 해서 ‘어려운 책’이 되지 않습니다. 낱말이나 말씨는 쉬워도 ‘어려운 책’이 있을 만하고, 낱말이나 말씨는 딱딱하고 메말라서 어려워 보여도 ‘쉬운 책’이 있을 만합니다. ‘어려운 책’이라 할 적에는, 하루아침에 섣불리 읽을 책이 아니지 싶습니다.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새길 책이 비로소 ‘어려운 책’이겠지요. 한 벌이나 두 벌, 또는 열 벌이나 쉰 벌쯤 읽어도 좀처럼 뜻을 새기기 만만하지 않지만, 알고 싶은 마음을 자꾸 일으키는 책이 바로 ‘어려운 책’일 테고요. 그러나 ‘말씨가 어려운 책’은 ‘어려운 책’이기보다는 ‘어려운 척하는 책’이나 ‘어렵게 보이려고 꾸민 책’이라 해야 옳지 싶습니다. 오래도록 곰곰이 새기거나 숱하게 되읽으면서 이야기를 살피는 책일 적에는 ‘읽으면서 배울 책’이 되지 싶어요. 다시 말해서, ‘어려운 책’이란 없다고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아니, 어려운 책은 없습니다. 말을 비틀거나 비꼬아서 일부러 딱딱하게 한 책은 있을 테지만, 줄거리가 어려워서 못 읽을 책이란 없습니다. 모든 책은 우리 스스로 알고 싶어하는 대로 읽습니다.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다면 못 읽습니다. 다섯 살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낱말로 엮은 책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안 열고 생각을 안 연다면, 그저 어렵다 싶은 책이 되겟지요. 한 벌이나 두 벌쯤 슥 훑고서 그치지 않기를 바라요. 오늘 줄거리를 다 알아낼 책이 있을 테지만, 모레나 글피에 줄거리를 느낄 책이 있을 테고,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나고서야 줄거리를 헤아릴 책이 있습니다. 두고두고 되읽는 사이 새롭게 스며드는 책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까 온누리에는 어려운 책도 쉬운 책도 따로 없이 ‘읽을 책’이 있으며, ‘읽으면서 배울 책’이 있고, ‘읽고 삭이고 새기면서 기쁘게 배우며 이야기꽃을 지피는 책’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저 책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2018.7.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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