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는 글쓰기



  전남 광양에 마실을 한다. 광양고등학교 푸름이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누린다. 두 시간 즈음 이야기를 한 뒤에 푸름이하고 따로따로 짧게 말을 섞는데, 어느 아이가 동무들한테 ‘휘둘린다’고 하는 말을 속삭이며 어떻게 해야 좋을는가를 나한테 살며시 묻는다. 그런데 이 아이가 매우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한 바람에 못 알아들었고, 다시 묻고 또 묻고서야, 이 아이 말을 알아들었다. 이 아이가 세 번째 목소리를 내어 주고서야 알아들었을 적에 ‘아이고야, 이런 얘기를 두 번이나 못 알아들었네’하고 속으로 뉘우쳤지만, 다른 한켠으로는 이 아이 스스로 제 걱정거리를 제대로 말하기 힘들었겠구나 싶었고, 힘들면서도 꼭 털어놓아서 풀이길을 찾고 싶어한다는 마음을 느꼈다. 아무튼 푸른 벗님이 입술을 제대로 열지 않고 달싹이는 바람에 못 알아들었다고 할 테지만, 거듭거듭 다시 말해 주려고 했기에 나는 이 아이 얼굴에 내 왼귀를 대면서 다시 말해 달라 했으며, 이 아이는 내 왼귀에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애써 얘기해 주었다. 어쩌면 나도 마흔 해 남짓 살며 뭔가 겪은 바가 있으니 푸른 벗한테 되물을 적에 얼굴을 마주하며 묻기보다 귀를 들이밀고서 다시 찬찬히 얘기해 달라고 하는구나 싶더라. 나도 모르게 이런 몸짓이 되었으니까. 광양고 푸름이가 마음에 담은 걱정거리를 털어놓아 주었을 적에, 내가 드디어 이 걱정거리를 알아들었을 적에, 참말로 절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그러고서 그 다음에는 더 말을 않고 종이에 여러 줄로 이야기를 적어 주었다.


 휘둘려 보았기에, 휘둘리는 동생이나 동무를

 만났을 적에 가만히 다가가서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을 고스란히 밝혀서 글 몇 줄로 광양 푸른 벗님한테 내 이야기를 적어 주었다. 나도 휘둘린 적이 있는 터라, 이 휘둘린 삶이 나중에 나한테 어떻게 스며들었는가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벗님이여, 푸른 벗님이여, 걱정하지 말자. 오늘 우리는 휘둘릴 수 있어. 그리고 오늘 휘둘렸어도 모레에는 씩씩하게 우리 길을 가면 돼. 그리고 있잖아, 너랑 나는 휘둘려 본 적이 있으니까, 휘둘려서 마음이 아프거나 힘든 다른 이웃인 동무를 만날 적에 가만히 부드럽게 다독여 줄 수 있단다. 휘둘려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휘둘리며 아픈 이웃이나 동무를 다독이거나 달래는 길을 몰라. 우리는 우리처럼 휘둘리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다음에는 씩씩하자고, 우리 마음을 다해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오늘 후박꽃내음이 얼마나 짙은지 아니? 고흥이나 광양이라고 하는 멋진 남녘 시골에서 살기에 우리는 오뉴월에 후박꽃내음을 맡으면서 몸이 튼튼할 수 있단다. 2018.6.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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