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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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주로 미스터리 계열 취향인지라 SF나 판타지, 과학소설 등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편이다. 어릴 때는 무작정 또래 아이들처럼 과학자를 꿈꾸다 보니 SF 내지 과학소설을

가끔 읽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선 거의 읽은 기억이 없는데 이 책은 워낙 수상도 많이 하고

평도 너무 좋아서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런 대접을 받는지 궁금증이 저절로 생겨났다.

이 책에는 테드 창이 발표한 여덟 편의 주옥같은 과학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역시나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바빌론의 탑'으로 시작하는데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얘기를 소재로

완전히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성서에선 바벨탑을 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인간들이 오늘날처럼 각기 다른 언어를 쓰게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이 책에선 바벨탑을 쌓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훨씬 더 현실적인 얘기가 나온다.

벽돌 하나를 꼭대기까지 가지고 올라가려면 무려 네 달이나 걸리는 상황에서 탑으로 올라가던 도중에 

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와 마지막의 반전까지 익숙한 듯 하면서도 다른 버전의 흥미로운 얘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바빌론의 탑'으로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 파악하고 나니 '이해'라는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료를 위해 호르몬 K 요법을 받다가 지능이 극도로 높아진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몰래 살아가려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남자와 한판 대결을 펼치는 영화같은 애기가 펼쳐진다.

'0으로 나누면'은 제목부터 수학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는데 수학적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치열한 공방과 갈등이 그려지고,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SF가 즐겨 다루는

외계인 얘기가 나오는데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흥미로운 과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영화를 통해 인간이 외계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대처하는지를 보아왔지만 인간의

관점이 아닌 외계인의 관점에 바라보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었는데 딸의 인생의 얘기와

섞이면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일흔 두 글자'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라는 기존의 생식방법을

벗어난 단성생식과 명명학의 관점에서 이름이 주는 강력한 의미를 절묘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인류 과학의 진화'는 메타인류 과학을 다룬 단 두 장밖에 안 되는 초단편이었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 신이란 존재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을 잘 담아냈고,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선호를

인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싶으면서도 그만큼 외모지상주의가 심각함을 잘 보여줬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기존에 쉽게 접하던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름을 새삼 실감했다.

과학적인 소재들을 다루다 보니 종종 난해한 부분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런 얘기들도

소설로서 충분히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특정 장르에만 치우친 편식하는 습관을

가졌던 나에게 과학소설 내지 SF 장르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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