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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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정유정 작가의 책은 '내 심장을 쏴라''7년의 밤'

읽어봤는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신작인 이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내용일까 정말 기대가 되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엘러리 퀸의 '악의 기원'과도 제목이 비슷해 악의 근원을 탐구하는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까 추측했지만 보기 드문 사이코패스를 등장시켜 강렬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요즘 묻지마 범죄들이 종종 발생하고 범인들이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이젠 대중적으로도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지만 사이코패스가 등장한 지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이제 스릴러의 단골 악역이 되었지만 국내 소설에선 아직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기 드물었는데 정유정 작가는 이 책에서 그 진면목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형이 사고로 죽고 어머니와 입양된 동갑내기 친구이자 형제인 해진과 함께 살던

주인공 유진은 어머니와 이모가 먹게 했던 약을 끊자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일어나

어머니가 참혹하게 살해된 걸 발견한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지만 왠지 자신이 그런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던 유진은 서서히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하는데...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것을 넘어서 친모를 살해하는 설정이니 어디까지 갈지 정말 궁금했다.

사이코패스가 모든 걸 정당화시킬 순 없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제시해야 하는데, 유진의 어머니와 이모는 이미 유진이 사이코패스란 사실을 알고 나름의 준비를 했었다.

유진은 어머니가 써놓은 노트를 발견하는데 어머니와 이모가 자신에게 일부러 약을 먹게 만들었음을

알고 경악한다. 자기 아이가 사이코패스란 진단을 받으면 부모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지만 가능한 모든 치료를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던 유진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 어머니는 청소년 행동 장애 전문의인

동생의 권유로 검사를 하지만 유진이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의 포식자인 프레데테란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게 된다. 하지만 남편과 큰 아들의 사고 아닌 죽음에 유진이 연관된

현장을 목격한 유진의 어머니는 차마 자식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동생의 도움을 받아 약을 먹이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타고난 사이코패스를 약을 먹인다고 제어할 수 없었다.

약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던 유진이 약을 끊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억눌러졌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고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이모가 자신에게 저지른 짓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자 찾아온 이모에게마저 복수의 칼날을 휘드른다.

유진의 폭주를 과연 누가 저지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친구이자 형제인 해진에게 희망을 걸어보지만

역시나 쉽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놓고 유진의 정체가 사이코패스임을 드러냈기 때문에 과연

그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어떤 최후를 맞게 될 것인가가 초점이라 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와 이모 등을 죽여서 좀 거북스런 면도 있었지만 왠지 화자가 유진이라 그런지 담담하게 

전개된 느낌이 들었다. 인간도 동물에 지나지 않기에 타고난 본능에 따라 행동할 수 있지만 

이성도 있고 교육과 사회적 환경을 통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통제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유진과 같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부모가 자식이란 이유로 감싸다 보니 발본색원할 기회를 놓치고 화를 불러오고 만다.

그나마 이 책에선 주로 가족들만 피해를 본 상태지만 연쇄살인마가 되어 날뛴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지 반문하게 만든다. 암튼 토종 작가의 작품치고는 독한 내용을 담아내서

조금 적응이 쉽진 않았지만 사이코패스를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워 악의 깊은 뿌리까지 파고들어

인간에게 있어 선악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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