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 살해사건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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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고려 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부터 예종 때 훈구파에 의해

남이 장군이 옥사당하는 사건까지 조선의 선비들이 살해당했던 사건들을 다뤘다면

2권에선 우리가 4대 사화로 알고 있는 제대로 된 선비 집단 살해사건들이 등장한다.

조선 건국 초기엔 주로 왕과 신하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신하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다면

2권에서 다루는 선비들의 죽음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선비간의 대결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세조의 반란을 도운 한명회 등 공신세력은 이후 훈구파로 불리며 조선 정권을 장악한다.

예종이 갑자기 죽은 후 후계자를 선택할 때부터 훈구파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도, 세조의 장자인 의경세자의 큰아들인 월산군도 제치고 왕위에 오른

자을산군 성종이 보위에 오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바로 한명회의 사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야말로 훈구파의 세상이 되고 말았는데 성종이 친정을 하기 시작한 후

나름 정치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그들의 전횡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었다.

이런 훈구파에 맞선 세력이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림파였다.

사림파들이 자신들의 독주에 조금씩 태클을 걸기 시작하자 벼르고 있던 훈구파는

연산군이 집권하자 김일손의 사초에 꼬투리를 잡아 무오사화를 일으킨다.

안 그래도 사관과 사림들에 불만이 많던 연산군을 충동질하는 건 식은죽 먹기였는데,

사람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트집잡아 신진 사림들의 씨를 말린다.

하지만 훈구파에게도 머지 않아 피바람이 불어닥친다.

연산군은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여된 훈구파 공신들에게 어머니의 복수를 하면서

갑자사화를 일으키는데 사림들 역시 안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연산군 시대에는 미친 임금의 비위에 거슬리면 바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선비들이라면 중앙 정계에 진출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연산군의 폭정에 결국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 반정 삼대장을 중심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성종의 차남인 진성대군을 보위에 올리는 데 그가 바로 중종이다.

신하가 임금을 갈아치우고 새 임금을 세웠기에 중종은 당연히 반정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조를 도왔던 한명회 등의 공신들과는 달리 박원종 등 반정세력은 일찍 세상을 뜨면서

생각보다 빨리 중종은 자신의 정치를 펼 수 있게 되고 그 중심에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을 기용한다. 

중종의 전적인 지지를 받은 조광조는 개혁에 앞장서 훈구파들이 누리던 특권을 없애기 시작한다.

원칙주의자였던 조광조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사건건 훈구파들과의 대결을 벌이고

심지어 임금인 자신에게도 압박을 가하자 중종은 점점 개혁피로감을 느끼며 조광조를 괘심하게 여긴다.

결국 이런 중종의 변화를 눈치 챈 훈구파는 있지도 않은 누명을 씌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를 제거하는 데 이게 바로 기묘사화였다.

무오사화나 갑자사화는 그래도 광인 임금 시절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자신이 발탁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중종은 좀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귀양가서 사약까지 받아 든 조광조가 끝까지 중종이 변심해서 자신을 살려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모습은 정말 안쓰러운 장면이었다. 아무리 임금과 신하관계가 슈퍼갑과 을의 관계지만

한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던 신하를 돌변해서 죽이는 임금의 모습은

권력의 잔인한 속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중종이 완성하지 못한 개혁을 완성해낼 수 있는 성군의 자질을 지녔던 인종이

계모인 문정왕후와 윤원로, 윤원형 형제의 압박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나이 어린 명종이 즉위하면서 또다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문정왕후와 그녀의 형제들인 소윤은 인종의 처가인 윤임의 대윤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또 한 번 말도 안 되는 음모를 꾸미는 데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아무 죄도 없는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자들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렇게 조선 전반기에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졌는데,

명종이 친정을 하게 되며 을사사화의 주역 윤원형을 쫓아내면서 결국 사림 세력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 책을 보니 그동안 제대로 정리가 안 되었던 4대 사화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땐 늘 4대 사화의 순서와 원인이 헷갈리곤 했는데

그 발단이나 전개 등을 차근차근 얘기로 풀어가니 역시 기억에 오래 남았다.

1,2권의 조선 선비 살해사건은 결국 사림이 집권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담아낸 것인데

이렇게 성리학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던 자들이 패권을 잡게 되자 붕당을 이뤄 싸우고

자기들이 비판하던 훈구파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세상의 속설은 그대로 보여줘서 씁쓸한 마음이 들게 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늘 말로만 이상적인 정치를 말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금방 타락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괴물로 전락하고 마는 게 정치인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암튼 조선 전기의 선비들의 수난사를 다룬 두 권의 책을 통해 조선 전기 역사를 잘 정리할 수 있었다.

역시 믿고 보는 이덕일표 역사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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