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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살해사건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평점 :
'조선 왕 독살 사건' 등 신선한 역사적 인식으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덕일의 이 책은 제목만 보면 마치 내가 즐겨 읽는 추리소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제목 그대로 조선의 건국과정부터 있었던 수없이 많았던 선비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흔히 4대 사화로 잘 알려진 사림들이 대거 죽은 사건들은 아마 2권에서 다뤄지는 것 같고
1권에서는 고려 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부터
예종 때 훈구파에 의해 남이 장군이 옥사당하는 사건까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선 나름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그렇게 생소하진 않았다.
특히 조선 건국 초의 얘기는 드라마 등으로 워낙 많이 다뤄져서 친숙하다 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도 적지 않았다.
먼저 이방원이 하여가로 정몽주를 설득하자 단심가로 거절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한
선죽교에서의 정몽주 암살은 단순히 정몽주를 포섭하려다 실패한 것에 불과했던 게 아니라
이성계의 역성혁명파가 정체절명의 위기에서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공신들이 대거 책봉되는데 조선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못하게 된 건
공신들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조선 건국의 1등 공신인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꿈꾸는데
대국인 명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며 위화도 회군을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사병혁파를 강력히 주장했던 정도전 일파에 맞서 사병의 힘을 바탕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이방원이 정작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자 사병을 모두 없애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흥미로웠다.
역시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기 편의적인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주었다.
처가며 사돈이며 피도 눈물도 없이 숙청을 했던 태종 이방원은
아들 세종이 태평성대를 이끌 초석을 닦았다는 점에서 나름 인정받고 있는데
성군으로만 알려진 세종에게도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바로 수령고소금지법을 시행하여 악덕 수령들의 횡포를 방치한 점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의 면모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세종 시절에는 무고한 선비들의 죽음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들인 병약한 문종이 이른 죽음과 나이 어린 단종의 즉위는 또 다른 피바람을 불고 온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에서도 본 것처럼 정상적인 통치체제를 무너뜨린 수양대군과
그 일파들의 쿠데타는 조선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게 만들었다.
정통성이 취약했던 세조는 자신이 왕이 되게 만들어준 공신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훈구파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방치하고 말았다.
차라리 태종처럼 집권 후에는 수족들을 과감히 잘라냈으면 모르겠지만
한명회를 비롯한 공신들에게 휘둘리면서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의 자신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마는데 한 번 잘못 낀 단추를 다시 제대로 맞추기란 불가능함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이 책에서도 역시 이덕일 특유의 능수능란한 역사 요리가 돋보였는데
조선 선비 살해 사건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조선의 4대 사화를 다룬 2권에서는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불꽃 튀는 대결을 보다 흥미진진하게 그려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