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정신분석
이창재 지음 / 아카넷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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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에는 그 민족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의 가치관이나 삶의 모습 등

많은 문화적 요소들이 가득 있는데, 신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리스 로마신화는

서양 문명의 기둥 역할을 하면서 오늘날에도 현대적 버전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만큼 신화가 주는 의미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세계의 여러 신화 속

인물들과 얘기들을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신화에 숨겨진 의미를 재발견하고 있다.

 

신화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각 민족의 무의식, 즉 억압된 소망, 분열된 정신 요소,

불안과 방어 유형, 무의식적 환상, 대상관계 양태, 자기 상태를 생생히 지각할 수 있게 한다.

정신분석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신화를 재조명하고 있는데,

프로이트가 개인 무의식을 명료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융은 인류의 원형적 무의식이

신화에서 어떤 양태로 상징화되는지에 주목했다는 차이가 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인류학, 민속학, 신화학의 관점과 신화학자 조셉

켐벨의 관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신화를 재해석하는데, 신화에 반영된 무의식의 유형들로 욕망과 불안의 숨겨진 원천인 억압된 무의식과 에너지와 지혜의 보물창고인 집단무의식, 모권적 무의식과

모성적 무의식, 자기애 무의식, 대타자 무의식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의식들이 투영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신화적 사고로는 프레이저의 왕 살해, 프로이트의 아버지 살해, 클라인의 나쁜 어머니 살해,

융의 어머니 살해 등이 있었는데, 영웅신화들에는 공통적으로 탄생 이전의 조건으로 대타자의 흔적이,

유년기 콤플렉스로 최초 대상들의 결함이, 청년기의 통과의례로 대타자 요구와 무의식과의 대결이,

조력자로 제2의 최초 대상들이 등장했고, 영웅들이 성취한 과업내용을 통해

대타자의 콤플렉스 유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영웅의 최후는 해당 민족의 세대 간 단절과

분열 내지 통합상태를 추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전 세계의 다양한 신화들을 통해 신화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새롭게 발견해내는데

먼저 우리 신화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창세신화를 비롯해 환인, 환웅, 웅녀, 단군으로 이어지는

신화 속 얘기는 서양과는 달리 극단적인 성적 충돌이나 균열이 거의 없었으며

여신의 악마화 과정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특색이 있었다.

마마보이라 할 수 있던 주몽의 영웅신화는 당대의 우리 민족이 어머니에 대한 강력한 애착이

있었음을 보여줬고, 황석영의 '바리데기'로 친숙한 바리데기 신화는

버림받은 영혼이 치유자로 변환되는 과정을 잘 보여줬다.

거인 반고로 시작되는 중국의 신화나 창세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얘기를 비롯한 일본의 신화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중국과 일본 민족의 무의식과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오만한 자가 현자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 길가메시의 신화나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를 통해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 이집트의 신화는

우리에겐 낯선 수메르와 이집트의 신화와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등으로

비교적 익숙한 그리스 신화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크로노스와 제우스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제거하는 장면은 왕 살해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고, 운명을 벗어나려는 부질없는 몸부림으로 프로이트가 사랑한 오이디푸스와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공통점을 가진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의 대표적인 영웅들의 신화, 

애절한 사랑 얘기라 할 수 있는 에로스와 프시케, 나르키소스와 에코 커플까지

아무래도 친근한 그리스 신화는 좀 더 몰입하면서 신화 속 의미를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토르' 등으로 낯설지 않은 북유럽의 신화까지

정말 전 세계 신화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었다.

신화를 보면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창세신화에선 동양은 자연만물이 최초 신의 자발적 변형에 의해 생겨난 반면

서양에선 최초 신이 신세대 신에게 살해되면서 새로운 창조활동이 생겨났다.

한편 영웅신화는 그 민족의 콤플렉스가 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니 신화가 단순히 문화유산의 보고에 불과한 게 아닌 그 민족의 무의식을 들여다봄으로써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

신화를 정신분석학의 눈으로 바라본 이 책은 신화의 가치를 더 풍성하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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