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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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하면 탐정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셜록 홈즈를 비롯해

소설 속 수많은 명탐정들이 있지만 국내파 명탐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국내 작품 저변이 그다지 넓지 않은데다가 아직 시리즈물이라 할 정도의

고정 팬을 확보한 작가도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인데 그나마 기억에 떠오르는 탐정은

도진기 작가의 '어둠의 변호사'에 등장하는 고진 정도다.

한편 명탐정과 같은 역할을 했던 실존 인물을 거론하자면 더욱 떠올리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 '흠흠신서' 등에 수록된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명탐정으로

불릴 만한 13명(복수 인물이 실린 사례까지 감안하면 총 16명)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인물 중에는 세종대왕, 정조와 같이 우리에게 성군으로 익숙한 왕들이 있는가 하면

의외로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도 명석한 두뇌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건해결에 재능을 보였다.

조선시대에도 미궁에 빠진 범죄들이 적지 않았는데 문제는 왕조사회라 보니

특권층의 범죄를 고발하여 단죄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즘도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법망을 교묘히 피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책에서도 종친이나 공신들이 저지른 범죄는

왕이 그들을 비호하는 바람에 처벌을 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그들을 고발한 사람이 화를 당하기가 쉬워 쉽게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이휘, 박처륜 등이 이들의 범죄를 용감하게 밝혀냈다. 

이 책에서 명탐정으로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명탐정은 역시나 정약용이었다.

전에 이수광의 '조선의 명탐정 정약용'이란 책을 통해 정약용의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흠흠신서'라는 오늘날의 형사 사건 수사, 판례집을 저술할 정도였으니

그의 공력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면 조선시대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간략하나마 알 수 있었다.

'신주무원록'이라는 수사지침서가 있어 그 당시로선 최선의 과학수사를 하도록 했고,

검시도 초검, 복검, 삼검의 세 번을 하도록 하며 오늘날의 삼심제와 비슷한 심급제도를 운영해

나름의 공정한 재판을 제도적으로 구현했다.

요즘처럼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기반이 없는 상태라 목격자나 심문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한계가 있어 순전히 수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공정하게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재밌는 점은 각 장의 끝에 소개한 인물과 유사한 소설 속 탐정들을 거론하는 부분인데,

세종은 모스경감, 연산군은 아르센 뤼팽, 정약용은 셜록 홈즈와 비교했다.

그 외에도 해리 보슈, 링컨 라임, 잭 리처 등 유명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총출동했는데

벤자민 위버, 루 아처, 페리 메이슨 등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 많아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국의 팩션들을 접할 때마다 국내에는 왜 이런 작품들이 적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아 그런지 내용이 풍성하지는 못한 편이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각종 사료 등을 통해 역사 속의 사건들에 대한 수사나

재판 사례를 발굴해내는 작업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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